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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권의 『심리철학』 정리노트
최소물리주의
(내-강경원-가 한 요약)
최소 물리주의는 우선, 물리적 차이 없이는 심적 차이도 없다는 심신 수반 논제를 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 논제는, 심적 속성을 가진 것은 무엇이든지 물리적 속성을 가진 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논제에 따르면 데카르트적 영혼이 오직 하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참이므로, 데카르트적 영혼 개념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순전히 심적인 존재란 있을 수 없다는 논제, 즉 오로지 물리적 사물과 대상들만 심적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논제를 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 심적인 것을 물리적인 것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임의의 대상이 어떠한 심적 속성들을 갖는지는 그것이 어떠한 물리적 속성들을 갖느냐에 의존하고 결정된다는 심신 의존 논제가 필요하고, 그것을 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끝)
[심신 수반 논제] 모든 물리적 속성들이 똑같은 두 사물(대상/사건/유기체/사람 등) 들이 심적 속성에서도 다를 수 없다면 심적인 것은 물리적인 것에 수반한다. 즉 물리적 식별 불가능성은 심리적 식별 불가능성을 필함한다. (물리적 차이 없이는 심적 차이도 없다).
이 논제는 심적 차이 없이는 물리적 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생화학상으로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만 우리와 동일한 심리를 공유하면서 지성을 갖춘 외계인을 상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즉 물리적으로 다른 생물들이 심리적으로는 똑같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논제에 따르면, 기껏해야 하나의 데카르트적 영혼이 있을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물리적 속성들을 결여한 심적 실체로서의 데카르트적 영혼이 둘이 있다면, 그 두 실체는 물리적인 면에서 전혀 차이가 나지 않게 되어 물리적으로 식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수반 원리는 그 두 영혼들이 동일한 심적 속성들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심리적으로 똑같다는 것)을 함축한다. 순전히 심적인 것이 어떻게 순전히 심적인 다른 것과 심리적인 특징 외에 차이가 날 수 있겠는가 ?
→ 물리적 차이가 심적 차이를 야기한다. 물리적 속성을 결여한 데카르트적 영혼은 물리적 차이 역시 가지지 않으므로, 물리적 차이에 의해 심적 차이가 야기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비물질적인 심적 실체를 주장하는 사람)이 오직 하나의 영혼이 있다는 결론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의미에서 수반 원리는 비물질적 영혼이나 실체로서의 마음을 주장하는 이론과는 양립 불가능하다.
심신 수반 논제는, 심적 속성을 가진 것은 무엇이든지 물리적 속성을 가진 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반 논제에 따르면, 데카르트적 영혼이 오직 하나라는 것은 참이다. 데카르트적 영혼 개념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다음이 필요하다.
[반 데카르트 원리] 순전히 심적인 존재란 있을 수 없다. 즉 물리적 속성을 갖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심적 속성을 가질 수 없다. (물리적 사물/대상들만 심적 속성을 가질 수 있다.)
[심신 의존 논제] 임의의 대상이 어떠한 심적 속성들을 갖는지는 그것이 어떠한 물리적 속성들을 갖느냐에 의존하고 그것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한 대상의 심적 성격은 그것의 물리적 성격에 의해서 전적으로 결정된다.
위 논제가 심신 수반 논제를 넘어서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 이 논제는 심적인 것에 대한 물리적인 것의 '존재론적' 우월성 내지는 '우선성'을 명시적으로 긍정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심적인 것을 물리적인 것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위 논제에 따르면, 어떤 주어진 대상이 왜 지금 그것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심적 특성을 갖는지, 또는 왜 그 대상이 심적으로 변하였는지를 설명하되 그 대상의 물리적인 성질에 관한 사실들을 지적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또한 두 생물체의 심적인 특징의 차이를 그것들의 물리적 및 생물학적인 차이를 끌어들임으로써 설명할 수 있게 된다(이러한 설명 방식이 전반적인 정신 영역, 특히 의식 영역에 걸쳐서 수행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논란거리다. 7장과 9장).
더욱이 우리는 심물이 의존한다는 사실을 심신 수반 자체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왜 대상의 심적 속성들이 그 대상의 물리적 속성들과 함께 앞에서 언급된 방식으로 공변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정신적인 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우리의 모든 심적 작용이 우리의 신경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심성을 갖춘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물리적이면서 생물학적인 구조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물리적인 구조를 설계하거나 구성하지 않고서 심적인 것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원리들이 최소 물리주의를 규정한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원리들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대상이 지닌 모든 속성이 물리적 속성이거나 아니면 그 대상의 물리적 속성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면서, (+) 물리적이지 아니한 것이 이 세계에 존재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세계에 있는 일부 대상들은 그것들의 물리적 성질에 의존하지 않는 속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 대상의 물리적 성질을 고정시킨다고 해서 그 대상의 심적인 성질이 고정되지는 않게 되고, 심적인 성질은 물리적 성질과 무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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