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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철학의 시대적 배경

 

강의_ 이성환 교수님

 

   ⓐ 이 강의록에서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이 갖고 있는 의미를 간단히 정리하고 그것이 근대철학에 어떻게 수용되는가를 정리할 것이다.

 

   르네상스 :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인간의 사유방식을 바꿈. 이론적 측면에서 이뤄졌다기보다 음악이나 미술같이 문예적으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예술적 양식 속에 신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인간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중세의 그림은 추상적으로 그려져 피와 살을 갖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않지만, 르네상스에 들어오면 신조차도 육감적인 인간의 모습처럼 그려진다. 르네상스는 인간을 모든 문예적 요소 속에 핵심적 위치로 끌어올린다.

 

   종교개혁 : 기독교 자체가 인간이 만든 제도를 통해 해석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주창자들의 주장이다. 프로테스탄트주의자들은 성서를 통해 직접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며 출발했으나 점점 교회 제도에 의해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게 된다. 따라서 자유롭게 신과 단독자로 면대 가능한 인간을 강조한다.

 

   과학혁명 : '인간이 인간의 힘에 의해 자연을 설명할 수 있다'. 과학적 사유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성서에 의해 자연적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즉, 성서에는 우리 세계는 하느님이 창조하고 하느님이 질서를 부여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렇게 성서 속에 설명되어 있는 모습으로 자연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인간의 경험이 확대되면서 성서에 기록된 것과 인간이 경험하는 사실이 아귀가 맞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론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설명해보니까 예전에 했던 것보다 훨씬 잘 되었다. 이처럼 성서 세계관을 무너뜨리면서 과학이 등장하게 된다. 즉, 인간이 자신이 가진 사유의 능력, 이성에 의해 자연적 세계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 또한, 스콜라 철학자들이 어떻게 근대철학의 토대를 닦았는지 설명할 것이다.

 

   보편논쟁 : 13세기부터 15세기 사이에 스콜라철학 후기가 전개되는데, 그 기간 중에 활동했던 윌리엄 오컴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것이 '보편'이다. 감각적으로 보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게 우리 바깥에는 상당히 많으나 '나무'라는 단어 하나로 감각개념에 주어지는 많은 것들을 우리는 포착할 수 있다. 여러 유형의 나무들이 있으나 우리는 '나무'라는 말 한마디로 그것들을 다 묶어낸다. 이처럼 하나의 언어가 내포하는 의미로 감각개념에 주어지는 것을 묶어내는 것을 '보편'이라 말한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반드시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감각경험에 주어진 것을 이름으로 만든 것도 있지만 한편 감각경험에 주어지지 않는데도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귀신, 사랑, 신, 정의 같은 것들이 그 예다. 그렇다면 감각경험에 주어지지 않는 대상도 '보편'으로 실재하는가? 우리가 '보편'이 실재한다고 말했을 때 애매한 부분은 여기서 드러난다. '신'이란 존재가 인간의 감각경험에 주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재'한다고 말할 때, 개념이 있기 때문에 신이 실재한다는 주장을 하면 "보편실재론자"이다.

 

   반대로, 보편은 이름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나무'라는 보편은 실재하는 게 아니라 소리에 지나지 않고, 그 나무라는 소리를 가지고 우리는 감각경험에 주어지는 무언가를 지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경험에 주어지는 것도 언어가 되었을 때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면, 감각에 주어지지 않는 것도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자연스럽다. 그럴 때 '신'이 실재하느냐? '개념이어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보편유명론"이다. 후자는 신학적으로 기독교를 훼손하는 이론이다.

 

   중세 후기에 오면, 보편실재론과 보편유명론 사이에 논쟁이 시작된다. 이 논쟁은 삼위일체론 때문에 촉발되었다. 보편실재론을 주장하면 세 종류의 신이 따로 있어야 하지만, 보편유명론은 실재는 우리가 지시할 수 없고 그것은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고 주장하게 되며, 이것이 오히려 신학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런 부분을 처리하기 위해 신학자들이 이론적으로 논쟁한 것이 '보편논쟁'이다.

 

   스콜라철학 후기에는 보편유명론이 힘을 쓰게 되고, 이 조류의 대표적 주자가 윌리엄 오컴이다. 경험할 수 있는 것과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뒤섞어서 우리는 논변할 수 없다는 것, 신학적 주제는 신앙의 대상이며 그것을 자연적 세계를 설명하는 것처럼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는 것, 신학적 주제와 우리의 경험적 세계의 주제를 구별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신앙과 세속적 지식 사이의 구분이 확연해진다.

 

   쿠자누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창조된 세계를 신이 현상한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신의 계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구체적으로 나타남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범신론"으로 토대를 닦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신의 계시가 아니라 신 그 자체가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그것이 범신론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논리로, 그는 신플라톤주의 {플라톤은 이데아계와 현상계라는 이원론을 가지고 있었지만, 플로티누스(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자가 차고 넘쳐 나온 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전체적 계층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플로티누스에 의하면 신에 가까울 수록 정신적 요소가 강하고 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물질적 요소가 강하다. 인간도 그 계층 속에 있다.} 를 채택한다. 쿠자누스는 이런 주장들을 통해 기독교적 교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 다음에 브루노가 등장한다. 브루노는 쿠자누스의 영향을 받아 우리가 사는 세계를 물신으로 보았는데, '능산적 자연', '소산적 자연'이라는 구분지를 최초로 만든 것은 이 브루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완전한 것이고 신이 창조한 세계는 따로 없다'는 논리 때문에 그는 화형을 당하게 된다. 이땐 이미 과학이 어느정도 진전하고 있었다(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계에 신의 숨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인간의 이성에 의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완전히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의 계시가 있는 게 아니고 자연을 움직이는 일반적인 원리가 있는 것이고, 이 자연적 원리를 발견하기만 하면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될 수도 있다는 자각이 생겨났다). 자연적 세계를 설명하는 천문학의 발전이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그 시점에 범신론, 물활론 같은 것들이 태동하여 근대적 사유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 중세말엽부터 여러 시대상이 맞물려 신학자들이 이론적 체계를 바꾸어가면서 신학자들의 결론도 세속의 지식에 가까울 정도로 모양을 바꾸어내었다.

▶ 신학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논리인 '과학'이란 것의 발전.

 

 

   ⓒ 과학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자.

 

   초기 신학자들은 플라톤주의자이거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즉, 연역논리)였던 것에 반해, 16~17세기에 활동한 과학자들은 세계를 연역적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다. 새롭게 등장한 후자의 지식인들은, '인간은 신이 창조한 세계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자기자신이 경험하는 반경 내에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신의 뜻을 보려면 구체적인 걸 봐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자연과학자들은 경험세계에서 구체적인 것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연을 그냥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방한 실험적 장치를 만들어내고,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자신이 만들어낸다. 이것은 신이 만들었다고 가정되어왔던 자연적 질서를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이 신과 똑같이 자연속에 일어나는 일을 장치로 모방한 것이 실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실험의 빈도수를 통해서 가설을 세우고 자연 현상에 이름을 붙인다 (물은 h20라는 식으로). 이렇게 인간 스스로가 자연적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하게 된다.

 

   더구나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적 발견에 의해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못할 일이 없다는 확신은 강화되었다. '인간이 유토피아를 기다리지 않고 인간의 힘에 의해서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구나' 하는 낙관주의가 생겨난 시점 역시 이 무렵이다. 

 

   또다른 중요한 사실. 실험과 관찰 후에 정교하게 가설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수학의 힘 덕분이다. 경험적 세계를 수학화함으로써 인간 바깥에 있는 경험적 세계를 증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학이 인간 자신의 이성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을 때, 그러한 세계는 결국 인간의 이성 속에 들어 있는 세계다. 그리하여 '선천적 지식, 본유관념'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철학을 하는 사람들의 대응 : '자연철학(=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말하고 있는데, 저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 옛날에는 신이라는 것을 통해 인간의 지식이 정당화되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산출되었다는 저런 지식들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점을 품고 많은 이들이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데카르트, 베이컨 등이 철학적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근대철학자들은 과학의 방법을 정당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근대철학의 전체적인 문제는 인식론에 걸려 있다.

 

   ※곁가지

   아리스토의 방법을 부정하기 위해서 베이컨이 세운 우상론. 그는 <신기관>에서 귀납논증을 말하기 전에 아리스토를 우상론으로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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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철학 말기 종교 보호 목적으로 인간의 이성을 신앙의 영역과 분리->갈라내진 인간의 이성의 영역이 과학이라는 것을 통해서 스스로 신에 가까워진다라는 확신을 가질 만큼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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