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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stote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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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기초 수업 [2015-2] (본페이지)

 

02.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기초 수업 [2015-2]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기초수업

 

형이상학 => 제일 철학

 

(도입시작)

이데아론의 문제점 :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지 못했다. “나무1과 나무2가 나무라는 제3의 무언가가 될 때 나무1과 나무2가 공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나무1과 나무2는 변증법적으로 나무로 변화해야 하는가 ?” 여기에 대한 아리스토의 응답은 질료-형상 이론이다.

(도입끝)

 

01. 플라톤과 아리스토가 변화를 설명하는 방식

 

Plato : 포도씨앗과 포도싹과 포도나무 모두가 포도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포도라는 것의 본질은 감각경험을 통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포도씨앗, 포도싹 등은 각각의 이데아이거나, 허상에 불과하다.

 

Aristo : 포도의 다양한 모습들 즉 포도씨앗, 포도싹, 포도나무라고 하는 변화를 설명하고 싶어한다.

 

<표시작>

 

 

 

 

<표끝>

 

현실태와 가능태 사이의 꿈틀거림이 곧 운동에 대한 설명이 된다.

나라는 존재는 드러나 있는 현실태지만 이것은 또다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02. aristo에게서 목적인의 의미는 무엇인가? 4원인 중에서 목적인은 어떤 역할을 할까 ?

제1질료와 제1형상은 없는 거지만 이론적으로는 필요하다. 제1질료에서 제1형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러한 방향으로 변화할 때, '포도나무'가 '포도나무'가 되었을 때 그 '포도나무'됨은 누가 결정해주었는가 ?

 

내가 다른 것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목적인이라고 한다. 앞의 도식에서 보았을 때 포도씨앗은 포도싹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 목적은 앞에서 끄는 목적이 아니라 밑에서 미는 목적이며, 정해져 있지 않은 목적이다. 따라서 완전자(제1형상)은 내가 모르지만, 모름에도 불구하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 된다.

 

03. 실체

아리스토의 형상은 그 자체의 모습이므로 실체는 모습을 가지지 않는다. cf. 이는 플라톤의 이론을 변화하는 세계로서 재해석한 것이다.

아리스토의 이론은 보편 개념도 마찬가지고 실체 개념도 마찬가지고 플라톤과 많이 다르다. 실체 개념은 아리스토에서부터 비롯되었고 중세에 들어와서 (고착)이 되었다. 그런데 이 논리학이라는 것과 형이상학, 이 둘의 관계는 닭과 계란의 관계라고도 볼 수 있고, 그러니까 우리가 존재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 ) 되는 것, 그렇다고 논리만 가지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같이 있어야 되는 것. 이런 문제 때문에 아리스토가 말하는 실체라는 것이 그냥 보편인가, 보편 개념인가, 보편 실체인가,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보편실체 개념으로 나가 있다면 여전히 플라톤적인 냄새가 굉장히 강한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플라톤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그렇게 되면 전혀 다른 형이상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04. 논리학

아리스토는 질료+형상론으로 '논리학'을 설명하려 한다.

다음 말을 생각해보자. “현실적인 것은 가능적인 것보다 논리적으로 먼저다.”

이것은 왜 문제가 되는가 ?

계란이든 닭이든 먼저 보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하는 aristo는 plato와 다르게 '지금 여기'에서 출발한다. 내가 보지 않은 것은 가능성으로서, 뭐가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을 다시 확인해보자. 현실적인 것은 가능적인 것보다 논리적으로 먼저다, 라는 것을 아까 닭과 계란으로 설명을 해도 되고 포도나무로 설명을 해도 되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보자. 아까 현실태와 가능태, 형상과 질료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내) 모습이다. 내가 바로 질료이자 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Q. 논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에서 가져온다는 것. 예를 들고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해보자.

 

닭이든 계란이든 사실은 상관이 없다. 우리가 닭을 보든지 계란을 보든지 둘 중에 먼저 보는 게 있을 것이다. 하필이면 닭은 먼저 본 사람과 하필이면 계란을 먼저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때 계란과 닭 중에 내가 본 것이 현실이다. 내가 보지 않은 모든 것은 가능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먼저라고 하는 것은 이게 뭐가 먼저인지인지 모르지만 말이 되는 것은 일단 내가 눈에 보이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

 

자 플라톤은 이데아가 있어야만 모든 것이 존재해. 그러나 아리스토는 현실에 무엇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야.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겠지 ?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추상이 아니예요. 말이 된다는 소리야. 말이 된다는 것은 바로 우리 현실에서 세계의 질서를 이룬다는 의미를 가져요. 그래서 형이상학과 논리학은 따로 떼어내 설명이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거지. 그런데 이 논리라는 것은 또 묘하게 논리적이라는 것은 질서이긴 한데 이 질서라는 것이 있어야 그안에 수많은 잡다한 재료들이 들어가서 모양을 갖춰서 드러내는거지.

 

그러면 현실태와 가능태가 어떻게 모습을 자꾸 바꿔가면서, 지금 내가 현실태이자 가능태다, 그리고 내가 질료이자 형상이다, 이때 무엇이 가능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알겠지 ? 내가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현실이야. 그런데 이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것 자체가 또 가능이야. 질료와 형상을 굳이 말로 가르자면 어느 것이 현실태고 어느 것이 가능태일까 ?

 

나는 형상에 가까워. 지금 현재는 내가 목적이야. 그리고 이 목적은 다시 질료가 될 거야. 질료가 된다는 말은 다시 다른 것으로 갈려고 준비를 하는 단계야. 형상은 지금 상태의 목적이야. 이 목적은 금방 다시 모습을 바꿀 준비를 하지. 금새 목적을 바꾸기 때문에 나는 다시 몸을 해체시켜. 변신 준비. 그래서 질료가 되는 거야. 이 질료 상태에 있으면 나는 사라지고 없을 거잖아. 그럼 질료는 당연히 가능태가 되는 거지. 질료가 현실태로 드러나게 해주는 힘이 형상이라는 거야. 이 부분을 헷갈리지 말 것.

질료는 항상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재료이기 때문에 무엇이 만들어질지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가능태로 있겠지. 현실태가 더이상 다른 것으로 만들어질 잠재적인 게 없는 상태가 완성태야. 그래서 그게 제1형상이 되는 것이야.

그러면 혼돈은 ? 이 안에 형상이 안 들어 있어. 가능만 있어. 운동의 목적이 없어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 그러니까 가능성으로만 있는 거야. 우리는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으면 안 돼요. 그 순간순간의 목적을 가지고 계단을 한칸씩 디디고 올라서야 되는 거거든.

 

05. 질료와 실체

 

ㄱ. 질료

재료이자 가능성. 이 질료는 실체와 다르다. 재료이긴 하지만 모습을 나타낸다. 이 앞에 얘기했던 질료는 형상을 안 가진 질료를 얘기한 것이고, 지금 우리 질료가 뭐 있어. 순수 질료가 있었고 그냥 질료가 있었잖아요. 여러분은 형상이 없는 질료까지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 것이었잖아[채록하지 않은 어떤 인간의 말], 그렇지?

나는 지금 질료와 형상 상태이지만 나는 다시 다른 모습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이 다시 질료가 된다,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이 질료는 더이상 순수질료가 아니라, 이 안에 형상이 같이 꿈틀거리고 있는 거예요. 따라서 순수질료와 달라요. 그걸 구분하고 이야기해야 됩니다.

그래서 재료이고 또 가능성이고, 이 가능성은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다시 질료이자 형상일 거예요. 이렇게 설명을 해버리면 이것은 실체가 될까, 실체가 안 될까? 이게 또 복잡한 게 뭐냐면, 아리스토는 이 실체를 제1실체와 제2실체로 또 나누거든. 이게 나뉘는 이유가 뭐냐면 이 실체라는 말의 의미를, 실체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야 한자 그대로 한다면. 탁자이고 나야. 그런데 문이 부서지면 더이상 문의 역할을 못하게 되겠지. 문이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실체는 어떤 독립적인 것,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이것은 이것으로 있는 게 실체야. 탁자가, 한영이가 있어서 탁자가 되는 게 아니야. 그냥 지는 탁자야. 누가 앉아 있어도 탁자는 탁자인 거야. 이게 실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실체라는 것이 항상 아리스토의 질료-형상 이론에 따르면 변화를 겪게 되는 거잖아. 실체이지만 변해. 독립적으로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지만 변해. 그렇기 때문에 이 실체는 제2실체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실체의 개념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질료라는 것과 같으면서도 다른 거야. 따라서 아리스토에게서 제1실체가 훨씬 더 본질적인 것이 되겠죠.

 

ㄴ. 실체

질료와 형상이 합쳐져서 현실태가 된 모습[어떤 애]. 그럼 이건 변화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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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로 넘어가자. 그는 논리학을 (특히 삼단논법) 정초하였으며 이는 판단(명제)의 관계를 따지는 작업이다. 판단(명제)의 기본형식은 “S는 P이다”로서, 그는 여기서 파생되는 AEIO명제의 논리를 따졌다. (*사태에 관한 판단 cf. 술어적 판단)

 

우리는 분필을 묘사할 때, 이것은 {희다, 기다랗다, 원통이다, ….} 라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다. 이때 괄호 안에 있는 것은 감각적인 것으로서 우연히 있는 것이며 속성이라 한다. 반면 '이것'은 괄호 안에 있는 것을 support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논리와 버클리를 비교해볼 수 있다. 버클리는 '이것'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괄호 안에 있는 술어들을 무수히 더해간 총합이 그 사물이라고 주장했다. 버클리에 의하면 '사물 자체'는 없어지게 되며, 감각적 내용인 관념의 다발만이 존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이것'과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밑에 서 있으므로 substantia라는 말이 붙으면서 기체(supporter)나 실체로 번역된다. 실체는 우시아 즉 '존재하는 것'이다. (* 흥미로운 부분이지만 보완이 상당히 필요하다.) 버클리를 반론하면서 이 주장을 옹호해보자. 버클리의 논리대로라면 볼 수 있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환상-환각과 진짜 있는 것이 구분가지 않는 난점이 생긴다.

 

“분필은 칠판에 글을 쓰는 것이다”. 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이때 분필은 분필 일반을 뜻하는 '보편자'이다. 그런데 혹자는 물을 수 있다 : 개별적인 분필들이 있을 뿐인 것 아닌가, 보편자라는 것은 진짜 있느냐 ? 그렇게 물으면 우리는 중세의 보편논쟁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러 개별자를 집합시키는 보편적 개념들이 없다고 하면, 저 문장은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한 진술이 되기 때문에 이 논쟁은 의미를 가진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생각해보면 '분필'이라는 보편자(일반명사)는 정확하게 그것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는 기체로서의 개별자를 제1실체로, '분필'이라는 보편자를 제2실체로 구분했다. “이것은 분필이다”라는 진술은 가지적 속성을 가진 지성적인 것이고, “이것은 둥글다”라는 진술은 가시적 속성을 가진 감각적인 것으로서, 이는 '지금 여기' 이 개별자에서 나온 개별적인 감각이다. 전자는 감각과 분리된 형상을 알아야만 안다고 말할 수 있고, 후자는 감각과 뗄 수 없는 형상인 '둥금'을 가지고 있다.

 

(*) 아리스토는 플라톤과 다르게, 기체를 지니고 있는 실체인 개별자를 강조한다. 이 개별자를 따지고 들어가는 4가지 길이 4원인론이다. 또한 플라톤이라면 idea이자 보편자인 분필 일반은 질료(석고)가 없다고 말했을 것이지만, 아리스토는 플라톤과 다르게, 형상은 질료를 반드시 동반하며, 질료를 개별화의 원리로서 주장한다. 아리스토에 의하면 분필은 질료가 그렇게 형상화되어 있으니까 분필이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의 현실태, 가능태 개념을 살펴보자. 에너지가 물질이 되고, 물질이 금이 되고, 금이 금반지가 된다고 하자. 아리스토의 이론을 적용하자면 '에너지 → 물질 → 금 → 금반지'라는 사슬에서 방향이 → 로 움직일수록 형상이 복잡해지며, 형상이 복잡해질수록 뛰어난 존재라 할 수 있다. → 로 움직일수록 존재는 현실태이며, 그 역으로 움직일수록 존재는 가능태이다. 그리고 가장 → 로 움직인 쪽에는 순수이성이 있다. 그것은 완전태, 순수현실태로 불리면서, telos라는 목적인이 된다. 아리스토에 의하면 우주의 모든 것은 완전태를 향해 나아간다. (*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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