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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기초 [2015]

 

 

(1) 칸트의 시대상

 

16,17C를 계몽주의 시대라 한다. 로크, 버클리, 흄이 살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중심적 사상 개념은 이성과 자유였다. 칸트 역시 계몽주의에 걸쳐 있으며 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자율적으로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을 미성숙한 사람이라 이야기하여, 누군가에게 후원을 받는 계층과 보호자가 되는 근대 성인남들을 이성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논리를 폈다. 이 논리가 국가로 넘어가서, 칸트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양도받은 사람들이 나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당대 권력에 대해 호의를 보이기도 한다. 이 시대의 경향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이성중심주의로, 이성이 곧 권력이 되고, 이성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18C에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으로 새롭게 낭만주의 사조가 등장한다. 그것은 계몽주의에 대한 대립적 입장이 아니라 보완적 입장으로서, 우리 속에 있는 다른 요소들을 그 사상 위에 덧붙이려 한다. 이는 아래 5항목에서 보다 자세히 논의될 것이다.

 

 

(2) 칸트의 문제의식

 

흄이 흔들어놓은 자연과학의 뿌리를 '선험적 종합판단'의 정당성을 근거로 되살리려고 한다. 

 

 

(3) 칸트 인식론의 구도 [기존 인식론의 문제 해결]

 

지각자의 머릿속 <-------(x구간)--------> 지각된 것 <--------(y구간) --------> 나무

 

- 칸트에 의하면, 근대 경험론자가 '나무'를 파악하지 못한 것, 흄이 '나무'가 불가능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게된 것은, 그들이 지식을 알려고 할 때 그 관점이 외계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즉 객관적 대상인 '나무'로 우리의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칸트는 거꾸로, 내 쪽에 있는 인식의 구조를 파악한다면 '나무'가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이를 통해 '나무'에 대한 지식은 보편성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진 개별적 사고를 인정하는 것만으로 '나무'의 보편성을 얻을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인다고 하는 인식틀의 똑같음이 전제가 된다면, '나무'의 객관성 역시 보증되기 때문이다. 

- 칸트의 이런 인식 전환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회자된다.

- 인식틀만 가지고 사물과 세계의 객관성을 보증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인식틀을 통해 포착되지 않는 바깥의 물자체가 무엇인지 묻지 말자고 칸트는 제의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식틀 너머에 있는 것을 탐구하려 하는 것이 바로 인간에게 오류를 범하게 한다. 칸트는 인간은 인식의 한계 내에서 앎을 추구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과학이라 말한다.

 

 

(4) 칸트는 우리 머릿속 인식의 틀을 어떻게 설명할까?

 

- 대상은 먼저 시공간의 형식 속에 들어온다. 이 형식은 내가 가진 선천적 조건이다. (선험적 감성론)

- 위를 통해 들어온 대상을 묶어내는 범주를 내가 가지고 있다. 이 범주들을 통해 개념이 형성되고, 그 다음에 판단의 영역을 거쳐, 지각하는 자는 지식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선험적 분석론)

 

※ 분석론 속 12범주

a. 양 : 단일한 것, 다수, 전체

b. 질 : 실재, 실재에 대한 부정, 제한

c. 관계 : 실체와 속성, 원인과 결과, 능동과 수동

d. 양상 : 가능/불가능, 실재/비실재, 필연/우연

 

 

(5) 칸트 사후의 문제 [독일관념론자들의 철학 구도]

 

물자체인 신, 세계, 자아(from 선험적 변증론, 『순수이성비판』)에 접근하는 것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오류라고 한다. 그런데 칸트는 이 오류를 가지고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다 말한다. 인과성의 법칙에는 오류가 없지만 물자체를 말하는 순간 인과성을 벗어나버리며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신, 세계, 자아는 상상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인간이 가진 자유의 영역이다. 이 자유를 『실천이성비판』으로 넘어와서 칸트는 도덕의 근거로 삼는다. 이후 칸트는 인과적 필연성 속에 있는 자연이 인간 자유와 합치되는 바를 말하기 위해서 자연의 합목적성 개념을 사용한다[#]. 자연의 합목적성이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매개가 된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 매개가 될 수 있을까? 이성이 행하는 상상력을 자유라 할 때, 칸트식의 자유는 요청된 것이기 때문에, 센세는 칸트는 자유를 온전히 설명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구도를 이성강조의 병폐로 보고 칸트 사후의 문제에 낭만주의적 요소를 끌어와 철학을 한 것이 독일관념론자들이다.

 

낭만주의는 인간적인 삶에 대한 유토피아적 기대를 포함하며, 독일관념론자들은 이상향의 표본을 고대 그리스의 공동체적 삶에서 발견하여 근대에 이야기된 개인의 자유위에 그것을 보완하여 세우려고 한다. 즉, 개인의 순수이성적 영역에 물자체적 영역인 공동체와 전체 세계에 대한 생각을 통일시키려 한다. 이때 공감 개념과 표현 개념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인식틀로 설명할 수 없는 '예술'으로 독일관념론자들의 관심사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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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은 순수이론적 이성에 대한 고찰로서 진리의 인식 문제를 다루고, 『실천이성비판』이 순수실천적 이성에 대한 고찰로서 도덕의 실천문제를 논한 것이라면, 남은 문제는 이론과 실천, 현상세계와 이념세계는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예술에서의 미적 판단과 자연의 합목적성의 문제로 집약되어 1790년에 출간된 『판단력 비판』에서 논의된다. 이 세 비판서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과 도덕적 실천 그리고 감정과 정서를 다룸으로써 진/선/미 또는 인간의 인식과 의지와 감정의 세 영역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칸트 사후의 문제는... 세 비판서의 가장 핵심적인 이성이 무엇일까? 이 이성들이 다 다른 이성인가? 이 세 가지 이성을 묶어줄 수 있는 근본적 토대가 되는 이성이 없을까? 칸트는 그것에 대한 적극적 저술을 남기지 않는다. 칸트 사후에 이는 논의되게 된다. 예를 들면, '물자체와 자유가 한 이성 속에 공동적인 토대를 가질 수 있는가?', '질료와 형식을 공동 분모 속에 이야기할 수 있나?', '질료 없이 형식이 성립할 수 있나?', '물자체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가?'. 칸트의 직접적 후계자들은 칸트가 남긴 문제들에 총체적인 “체계상”을 만드려고 노력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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