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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사후의 문제들 [2015-2]

 

 

(본 문서는 이 교수님의 강의 딕테이다.)

 

 

  1. 우리는 칸트를 인식론과 윤리학, 두 구획으로 나누어서 공부했었다. 인식론 부분은 순수이성비판을 정돈한 것인데, 변증론 부분은 정돈을 안 한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앞부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적인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인식이다. 흄이 자연적 세계에 관한 지식이 필연적 토대가 없다고 말하는 데 대해서 칸트는 필연적 토대를 제공하려 했다. 그래서 자기가 제공했던 부분을 '순수오성 개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범주'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를 일컬어 선험적 조건이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성의 조건. 그런 조건 속에 우리가 바라보는 자연적 세계는 필연적일 수 있다, 는 것을 증명한다. 그다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라고 말할 때 자연적 세계 밖에 없는가? 인간이 그 자연적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부분이 있으며, 인간은 공동체를 만들고 인간과 인간 관계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장 근본적 토대-신을 요청하기도 하고, 인간의 경험적 인식이라고 할때, 인간의 신체적 유한성 때문에 세계라는 총체성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경험적 세계를 넘어서 있는 세계의 총체상-이것고 인간과 인간, 인간의 공동체를 토대지우는 근본이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감각경험에 주어지는 지식의 확실성을 넘어나아가있는 것이라고 칸트는 본다. 사람들은 그부분을 우리가 감각경험에 주어지는 자연적세계처럼 설명하려고 햇으므로 오류가 발생. 칸트는 과학이 탐구할수있는지식의영역과 과학이 탐구할수없는 지식의영역을 나눈 것이다. 그것이 '이성비판'을가지고 말한 바이다.

  2. 그런데 이렇게 '이성비판'이라고 말하는 것의 원형은, 이미 로크 속에 들어있다. 로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에게 오성적 능력이 있다. 인간이 지식을 갖는다고 말하면 오성적 능력을 넘어 나아가서 지식을 획득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감각에 주어진 것과 이 감각에 주어진 것을 인식으로 만드는 요소만이 인간의 인식의 영역속에 다룰 수있다. 지식의 영역의 범위, 대상, 인간이 갖고 있는 이성의능력을 규정한것이 로크의 인식론인데 칸트는 인식비판에서 다른 개념들로 말하기에 어렵게 느껴진다.

  3. 순수이성비판- 인간이갖고있는 사유의 능력은 대상에 관련된 것인데 이 대상에 관련된 부분을 빼고, 대상의 성립조건인 인간의 선천적 조건을 탐구하자,이렇게 말하니까, 이성의 내용은 순수이성이 되는 것이다. 순수이성을 검토해보면 (경험적요소를빼고) 인간이 순수이성을 가지고 도달할수 있는 영역은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적 세계에 관련되는 순수이성을 넘어나아가는 데 사용되는 순수이성의 사용을 금한다면 인간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

  4.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공동체, 삶의 장, 자연과 인간공동체의 토대가 되는 근원, 이것에 관련된 것은 다른 이성적 능력에 의해 검토해야 한다.-실천이성비판. 그다음에 자연이든 인간공동체든 그 근거가 되는 토대가 있다, 이 토대가 없다고말하면 자연의 총체상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고 인간삶의 근거에 관해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신을 요청한다(이신론 ; 이성에 의해 증명되거나 요청되어 이성으로부터 유래한 신). 결국 칸트는 실천이성으로 탐구할만한 게 따로 있다고 말한 것이다. 자연을 설명하는 과학적 개념의 원형은 인과율이란 것인데, 흄이 부정한 인과율은 칸트는 순수오성개념의 관계개념으로, 인간이 갖고있는 선천적 조건이 있다고 말하면, 그 반대로 실천이성이 탐구하는 게 뭘까? 

  5.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유한 인간적 조건이 뭘까? → 자유.

  6. 인간은 자연적 세계와 달리 스스로 자기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 자연적세계는 인과율에 의해 과거와 현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인간의 행동은 자유로우며 과거로부터 내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기의 현재를 행동한다. 

  7.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유에 의해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어야 하며 인간의 공동체도 자유의 공동체여야 한다는 생각. 인간의 도덕적 세계는 자유를 발판으로 이룩되어야 한다는 것.

  8. * 순수이성 – 인과필연성의 영역

  9. * 실천이성 – 자유의 영역

  10. 으로 다르다.

  11.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물을 생각해보자. 이 사물은 인간이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 질료가 주어지는데 형상이 따로 있다. 형상은 인간을 매개로 해서 질료 속에 자기를 드러낸다. 질료는 필연의 세계, 형상에는 인간의 자유가 적용되므로, 우리 세계는 자유와 필연의 결합. 미학은 근본적으로 자유와 필연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제3의 요소라고 말한다. 그래서 판단력 비판이 제3비판이 된다. (미적 이성)

  12. 세 비판서의 가장 핵심적인 이성이 무엇일까? 이 이성들이 다 다른 이성인가? 이 세 가지 이성을 묶어줄 수 있는 근본적 토대가 되는 이성이 없을까? 칸트는 그것에 대한 적극적 저술을 남기지 않는다. 칸트 사후에 이는 논의되게 된다. 예를 들면, '물자체와 자유가 한 이성 속에 공동적인 토대를 가질 수 있는가?', '질료와 형식을 공동 분모 속에 이야기할 수 있나?', '질료 없이 형식이 성립할 수 있나?', '물자체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가?'. 칸트의 직접적 후계자들은 칸트가 남긴 문제들에 총체적인 “체계상”을 만드려고 노력한 자들이다. 그 전체적 체계를 묶어줄 수 있는 가장 근원적 토대를 탐구하려 한다. 

  13. 그래서 뒤의 사람들은 칸트의 자아를 경험적 자아와 선험적 자아를 갈라내고 선험적 자아 위에 칸트의 철학 체계를 다 세우려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선험적 관념론이라는 개념이 그 이후에 전승된다. 그 선험적 관념론이 내용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피히테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내용'을 채우려고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피히테의 '비아'도 이 '내용'에 해당하는 것. 칸트의 체계상에 대한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피히테, 셸링, 헤겔 (독일관념론) 이다. 

  14. 칸트는 왜 순수이성비판을 쓰고 실천이성비판을 썼을까(시대상)? 프랑스혁명을 칸트는 부정적으로 본다. 헤겔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데카르트적 사유가 사회적 사건으로 등장한 것은 17세기와 영국경험론이 맞물린 계몽주의 시대에 표출된다. 로크가 <인간오성론>을 쓰면서 정치사회의 근본적인 조건을 사람들의 계약에 의해 정부가 성립된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적 세계에 관해서 인식비판을 한다할때,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사실 이외에 어떤 것들도 전제하지 않고 인간의 지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사회에 적용시킨 것이다. 왕과 귀족의 왕권 자체가 하늘(신)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 로크에 의하면, 해부된 권력 속에 신으로부터 온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자연권밖에 없다. 17세기 계몽주의는 이런 요소로 이룩되어 있다.

  15. 그런데, 실제로 인간이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을 해체시킴과 동시에 전통적 관습역시 무너진다. 인간의 삶의 표현도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없음으로 무너진다. 그러므로 계몽주의가 억압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것은 결정적이지만, 반대로 인간의 삶은 역사적 조건으로 형성되고 관습이 지탱하는 것인데 계몽주의는 이것역시 해체한다. 이것에 대한 반성으로 낭만주의가 등장한다. 계몽주의는 이성을 발판으로 하는 것이고 낭만주의는 인간의 감정, 느낌, 삶의 열정을 강조한다. 계몽주의가 흔들어놓은 인간의 삶의 토대에 관한 반성. 

  16. 독일관념론은 왜 유기체적 통합을 이야기하는가? 독일에서 처음으로 낭만주의가 등장했다. 가장 큰 이유는 독일의 후진성(민족, 경제), 30년 전쟁이 독일을 중심으로 이룩되어 종교에 대한 감수성. 낭만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삶이 인간의 이성적 질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인간의 느낌, 감수성이 중요하다고 본 것.  

  17. 헤르더는 생명의 원형은 자기표현이라고 주장. 자연은 자기스스로 자기표현을 하고 있다. 낭만주의가 바라보는 인간의 대상은 인간 삶의 자기표현. 그걸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언어. (낭만주의에서 인간 삶의 자기표현은 인간 중 정점에 있는 사람에 의해 극에 달하며 그것은 천재미학과 연결된다.) 언어라는 것이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헤르더는 낭만주의를 대변.

  18. 낭만주의 속에는 자기라는 말 속에 표현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유성, 자유. 인간의 자기표현은 그 자유로부터 말미암는다.

  19. 이는 실천이성의 자유 개념과 다른 것이다. 인간은 선의지가 있는데 그건 외적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부터 오는 것이다. ↔ 인간은 열정과 욕망이 있고 이것이 밖으로 표출될 때 개성을 드러내는 거다 라는 자유. [칸트 ↔ 헤르더]

  20.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결합시킬 수 있는 틀이 없을까? 칸트의 이원론적 틀을 묶어내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정신을 묶어내려는 노력도 있을 수 있다. 피히테부터 이 두가지가 동시에 수행된다(피히테 셀링 헤겔은 칸트의 철학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시대정신을 묶어낼 때 칸트 철학을 묶어내는 방식을 원용해온다 /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묶어낸 사람이 헤겔이다). 그러면서 칸트의 문제영역 밖으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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