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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와 자유』 결론 : 자유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실현 가능하다.
자유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개념이자 문제다. 우리가 자유를 논함에 있어 메를로-퐁티 연구를 대상으로 삼은 것은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자유가 아닌, 구체적이고 실재하는 자유가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를 밝혀 보이기 위해서다. 사실상 철학은 많은 부분이 관념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삶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자유에 관한 논의는 철학적 이념을 근거로 하여 사회적 실천의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유는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머물며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기만 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자유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지만, 근대적 자유는 메를로-퐁티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 낙인찍혔다. 메를로-퐁티는 그 근본인을 근대철학적 사유에서 찾고 있다.
근대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신과 신체의 이분법이다. 물론 근대철학 이전에도 정신과 신체는 구별되어 왔으며, 특히 정신은 인간을 다른 사물적 존재와 구별하게 해주는 유일한 능력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럼에도 메를로-퐁티가 자신의 철학적 작업의 시작을 근대철학의 비판에 둔 것은 근대철학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이 인간을 철저히 이념화하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의 이러한 철학적 사유가 현상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메를로-퐁티가 다른 현상학자들과 구별되는 것은 그가 '신체'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상학자들과 문제의식을 같이함에도 불구하고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자들, 특히 후설의 경우, 여전히 근대 인식론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이것으로 보아 현상학자들이 제기한 근대철학의 문제점은 '신체'를 말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의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의 논의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근대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분법을 통해 신체를 배제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신체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일차적 문제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각에 대한 문제를 고찰하였다. 신체가 배제된 원인으로 지각에 대한 편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각이 신체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근대철학은 정신 혹은 이성의 문제로 다루었다. 다시 말해 근대철학은 지각의 느낌, 지각의 구체적 현상을 보지 않고, 지각을 분석하고 판단함으로써 지각 그 자체의 기본성을 잃어버렸다. 지각은 앎의 가장 기본적 단계이다. 따라서 지각의 기본성을 밝혀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이상의 앎의 문제에 대해 논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각에 대한 편견은 신체를 배제하고 오직 이성적 사유만을 유일한 앎의 근원으로 여기게끔 하였다.
근대적 사유의 기본틀인 이분법적 구조는 인간에 대한 이해 불가능성과 더불어 자유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분법적 구조는 근대적 사유가 지배하는 곳곳에 있다. 그것은 관념론과 실재론, 정신과 신체, 주체와 객체, 절대적 자유와 인과결정론으로 존재한다. 그 둘의 관계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다. 그렇다고 칸트처럼 둘을 양립관계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나는 칸트가 그 둘을 양립하려 한 것이 근대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성과에 대해 칸트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칸트에 의하면 근대 인식론이 실패한 것은 알 수 없는 것을 알고자 했던 무모함 때문이다. 그 무모함은 칸트가 앎의 가능성을 순수이성의 선천적 형식에서 찾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므로, 우리가 이성에 대해 분명히 안다면 외적 대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 자유는 인격의 문제기도 하지만, 객관적 학문의 확장 또는 발전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선험적 자유를 확보하고 그것을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자유에 실천적 의미를 부여하려 했으나, 이러한 칸트의 시도는 실패한다. 왜냐하면 실천적 자유 역시 선험적 자유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근대 인식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빠른 접근은 코기토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있음을 확인한다. 여기에 대한 확신은 칸트의 인식론에서 비롯된다. 사실상 우리는 주체 개념을 포기할 수는 없다. 고전적 사유 방식에 따르면 주체 개념은 의식의 문제였다. 특히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사유가 곧 주체임을 분명히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주체가 의식, 즉 데카르트적 코기토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신체화된 코기토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말하면 메를로-퐁티는 신체와 정신을 이분화하지 않고 동전의 양면과 같이, 또는 옷감의 안과 겉처럼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코기토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되기보다는 신체화된 코기토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등장한다.
우리가 여기서 부딪히는 심각한 문제는 '신체'라는 개념에 있다. 메를로-퐁티는 여러 방법으로 신체가 사물적이고 객관적인 신체가 아니고 고유한 신체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고유한 신체는 지각적 현상과 세계, 그리고 타인과의 지향성을 통해서 비로소 알려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각한다는 것은 나의 의식이 세계로 향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세계 속에 내가 던져져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세계에 태어나고, 세계에로 참여하며, 세계를 열어 간다. 세계 속에 던져진 나는 지각적 활동을 통해 세계에 참여한다. 신체화된 코기토와 세계의 상관관계는 지각을 통해 형성된다. 지각은 반성적 영역이 아니라 반성 이전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지각은 지각의 장 속에서 '체험'된다. 체험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지각에 대한 이해는 신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에게 지각론은 곧 신체론이 된다. 지각의 주체는 사유하는 자아가 아니라 자기의 세계를 펼치는 존재로서 고유한 신체이다.
그러나 메를로-퐁티는 '신체' 개념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고전적 사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메를로-퐁티의 설명 방식에서 우리는 신체와 정신이 구별되는 현상을 여전히 목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체라는 개념을 메를로-퐁티가 의도하고자 하는 고유한 신체, 의식과 하나된 신체로 받아들인다. 메를로-퐁티의 이러한 문제점은 후기에 이르러 수정된다. 그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신체의 현상학을 살의 현상학으로 변경시킨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살'을 쓰지 않고 '신체'를 쓴 것은 <지각의 현상학>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가장 크다. 고유한 신체가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신체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근대 인식론하에서 신체의 문제를 자유의 문제와 함께 논함에 있어 양립 가능적이라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신체가 인정된다면 자유는 결정론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신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자유는 비결정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반면, 신체와 정신이 동시에 인정된다면 그것은 양립론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두 개념은 모순이며, 모순은 논리적으로 함께 있을 수 없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기계적으로 이해되었던 '신체'와 유령으로서 존재하는 '정신'이라는 개념 대신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에 따라 자유 개념도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메를로-퐁티는 인간의 자유가 '조건 지어진 자유'임을 주장한다.
이미 우리가 말했듯 조건 지어진 자유는 자유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메를로-퐁티는 조건 지어진 자유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위해 신체, 지각, 새로운 코기토에 대해 고찰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러한 개념들을 다루지 않고 그 자체로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유'를 말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자유는 우리가 정의해오듯 이념이 아닌 행위의 문제이긴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자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행위란 그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공간적 주체로서 내가 의도, 결심, 행위 등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세계를 열고 참여하는 것, 이것이 자유이다.
우리가 메를로-퐁티의 자유 개념을 통해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실존의 문제이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의 논리적 구조를 말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신체적 반응에 대한 생리적으로 심리학적인 연구도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과학적 대상과 같이 실험이나 관찰만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존의 문제는 결코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존은 인간이 세계에 거주하면서 처하게 되는 물리적, 사회적 상황 속에 스스로 참여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참여한다는 것은 나의 자유를 확인하는 동시에 제한하기도 하는 양의성을 띤다. 나는 어떤 일을 할 수도 있으며,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무언가를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적 관계에서 대상을 주체의 구성물로 간주하고 그것을 관념화한 것과 같은 인식의 관계는 인간의 자유와 실존을 설명하지 못한다.
자유는 우리가 세계에 참여함으로써 부딪히게 되는 모든 상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을 수동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장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선택의 장, 자유의 장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과 자유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역사적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는 속에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가 선택과 자유의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었던 계급 의식에 관한 논의는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메를로-퐁티를 통해 신체와 지각의 의미를 회복함으로써 자유의 실현을 체험하고 확인할 수 있다. 메를로-퐁티에 의한 자유는 상황의 자유이다. 이 자유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 타자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구체적 삶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