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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철학에 대한 들뢰즈의 비판에 관련한 수업 (2015-2)

 

『현대 프랑스 철학사』, 한국프랑스철학회 엮음, 파주 : 창비, 2015

4부/ 후기구조주의 - 14장/ 질 들뢰즈 (서동욱)

 

   『경험론과 주체성』(1953) – 경험론에 대한 들뢰즈의 취향은 이후 일관되게 지속되어 이른바 합리론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스피노자 역시 경험론자로 해석하려 하며, 흄의 경험론과는 거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들뢰즈 그 자신의 독특한 형태의 경험론으로 결실을 본다(물론 '발생'의 관점을 채택한다는 점에서는 1953년의 흄 연구 또한 들뢰즈의 경험론을 준비하는 도정의 일부를 이룬다.). 이후 『니체와 철학』,『칸트의 비판 철학』,『프루스뜨와 기호들』,『베르그손주의』,『자허 마조크 소개』 등을 출간한다. 이 철학자, 작가들은 모두 들뢰즈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데, 들뢰즈 책에서 전개된, 이들의 사상에 대한 독창적인 해독은 이후 『차이와 반복』(1968)에서 종합된다.

 

   국가박사학위 주논문 『차이와 반복』과 부논문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는 들뢰즈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입장을 완성. 여기서 들뢰즈는 스코투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니체 등을 주된 배경으로 삼아 '존재의 일의성' 및 그를 배경으로 한 '개체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스코투스와 스피노자를 배경으로 존재는 실질적으로 다수로 구별되지만 이 다수는 실체적 다수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가 갖는 형식상의 다수임을 보인다. 존재의 실체적 다수성을 지양함으로써 존재자들 사이의 위계의 성립이 부정된다. 이후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배경으로 다양한 개체들의 발생은 저 하나의 존재가 가진 힘의 '강도적 크기'의 다양성으로 설명한다.

 

   이후 『차이와 반복』의 주제들을 스토아철학 및 루이스 캐럴을 배경으로 펼쳐 보이는 『의미의 논리』를 출간, 1970년대부터 좌파 정신분석학자 가따리와의 협업을 통해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개의 고원』을 내놓는다. 『안티 오이디푸스』의 핵심 기획은 정신분석학을 자본주의 체제의 학문적 요구로서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오이디푸스(부성적인 법)의 개입을 통해 스스로의 본성에서부터 분리된 욕망의 정체를 폭로한다. 이것은 학문적 차원에서는 정신분석 비판이며, 정치적 차원에서는 정신분석의 개념들에 상응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천개의 고원』에서는 오이디푸스적 법을 통해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수많은 방식의 익명적 삶을 추적한다. 이 두 저작의 배경에는 부정성을 매개로 자기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카르뜨에서 헤겔에 이르는 근대철학적 주체에 대한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353) 사유의 가능조건, 사유가 가능하기 위한 지평을 가리켜 들뢰즈는 사유의 이미지라고 부른다. 누구나 공유하는 것, 누구나 문제 삼지 않는 것, 그것 없이는 '보편적인 것으로서' 사유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것이 사유의 이미지다. 더이상 그 존립 근거를 질문 받지 않는 공리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비유컨대 사유의 이미지는 하나의 수학체계가 가능하기 위한 공리와 같은 성격을 가지며 또 교회 공동체의 지반을 이루는 '도그마'와 같은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들뢰즈는 고전철학이 전제해온 사유의 이미지의 공리들이 임의적이라는 것을 보인 후, 임의적 전제 없이 '발생하는' 사유를 그려 보이고자 한다. (353)

 

   (353~354) 진리 찾기를 위한 자발적 의지는 임의적인 것이며 진리는 그것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강제 때문에 탐구된다는 것, 대상의 동일성의 형식은 임의적이라는 것, 마음의 능력들은 인식을 위해 서로 조화하도록 미리 짜여 있지 않고 발생적으로 조화한다는 것, 정해진 답이 있기보다는 사유하도록 만드는 문제만이 있다는 것 등이 들뢰즈가 고전철학의 사유의 이미지의 공리들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시하는 주장들이다.(353~354)

 

   (354) 그렇다면 인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바로 무엇인지 그 정체가 알려지지 않음으로 해서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것, 이른바 '기호'의 자극을 통해 진리 찾기는 시작된다. 기호의 자극으로부터 인식에의 도달은 들뢰즈의 독특한 스피노자 독해, 스피노자 인식이론에서 경험적 요소를 강요하는 해석을 통해 얻어진 산물이다. 스피노자에서, 사유자가 최초로 처해 있는 '경험적 조건'이라 할 수 있는 '기호'는 일종의 억견, 부적합 관념이라 불리는 것이고, 참된 인식은 '표현', 이른바 적합 관념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미지의 기호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이어서 이성이 그 기호를 여러 관계들(사물들 사이의 일치, 반대 등) 속에서 고찰함으로써 표현의 관념에 이를 수 있다고 스피노자를 해석한다. 말하자면, 인식을 위해 미리 짜인 능력들의 조화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기호의 자극에 의한 상상력의 활동과 이에 뒤이은 이성의 활동의 발생적 일치가 있는 것이다. [# 프루스뜨와 기호들] (354)

 

   (355~356) 항들 간의 유사성이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 때문에 유사성이 산출된다. 플라톤 이래 대상을 규정하는 근본 개념은 동일성(가령 이데아의 자기동일성)과 유사성(그 이데아와 이를 분유받은 대상의 유사성)이었으나, 이제 들뢰즈의 인식론을 통해 차이가 근본 개념이며, 동일성과 유사성은 그 결과물임이 드러나는 것이다.(355~356)

 

   (356) 들뢰즈는 라이프니츠가 말한 유명한, 수영을 배우는 사람의 예를 들며, 배움을 “자연과 정신 사이의 어떤 깊은 공모관계”로 이해한다. 자연의 측면에서 보면 파도를 형성하는 물방울들이 있다. 다수의 물방울들이 있다는 것은 그 다수를 만들어내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그 물방울들의 관계(그리고 그 관계를 산출하는 차이)와 병행하는 정신의 지각이 있다. 수영을 배우는 사람이 물방울의 움직임에 그때그때 대응해 몸을 움직이지만 의식하지 못하고서 그러는 데서 알 수 있듯, 물방울들의 관계에 대응하는 지각은 '무의식적인 미세지각'이다. 물방울들이 모여 마침내 동일성의 형식을 갖춘 파도가 출현하고, 이와 동시적으로 파도에 대한 의식적 지각 역시 출현한다. 결국 지각과 그 지각에 병행적인 자연 모두는 '공통의 하나의' 이념, 즉 '차이의 이념'을 근거로 나란히 형성된다. 아울러 의식되지 않는 미세지각을 근거로 의식적 차원에서 동일성의 형식을 갖춘 대상이 결과로서 주어진다면, 들뢰즈에게서 '배움은 무의식을 경유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프니츠 철학 체계의 미적분적 경향의 연장선! 미적분 vs 집합론은 badiouian 01 항목을 참조하라.] (356)

 

   (357) [들뢰즈가 비판하려고 하는] 다의성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가령 창조자라는 존재와 피조물이라는 존재를 보자. 두 존재는 같은 의미로 서술될 수 있을까 ?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신 존재가 가지는 것은] ''베일에 싸인 탁월성''이다. ...신 존재는 ''~이 아니라는 부정으로만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이 '부정성'의 의미다. ...인간 존재가 지혜롭다는 말과 신 존재가 지혜롭다는 말은 서로 다르나(다의성), 이 두 존재의 지혜 사이에는 비례관계가 있다. 마치 기념품점에서 산 에펠탑과 빠리의 에펠탑이 서로 다르지만 비례관계인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유비'의 의미다. (357)

 

   (357~358) 대체로 서양존재론은 존재의 의미의 '다의성'에서 출발해, 한 존재가 다른 존재보다 '탁월'하다는 개념을 도입하고, 그런 다음 '부정성'으로 나아가거나 '유비'로 나아간다. (357~358)

 

   (358) 이 두가지[즉 다의성에서 출발한 부정성과 유비]는 모두 우리 삶의 운명을 공상으로 꾸며진 피안에 맡긴 채 삶을 피안의 탁월한 것에 대해 열등한 것으로 비하하는 일이다. (358)

 

   (359) 일의성은, 존재는 늘 한가지 의미이며, 그 존재가 말해지는 대상은 '다의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철학에서는 이 일의성을 구현한 자가 스피노자이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연장'과 '사유'는 서로 다른 의미이지만, 동일한 한 존재의 형식들이다. 존재는 늘 한가지 의미이고, 오로지 그 이름들(또는 형식들)만이 다의적이라면, 존재는 이 형식들의 '차이'를 통해서만 언명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차이'가 존재를 규정하는 근본 개념이 된다. (359)

 

   (360) 차안의 사물들의 원인이라고 사람들이 믿었던 탁월한 피안의 세계는 어떤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 '내재성'이란 바로 이런 부가적인 초월적 세계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이 내재성의 세계에는 '부정'이 끼어들 수가 없다. 탁월한 피안이 없으므로, '차안이 아니다'라는 방식으로 피안을 생각할 수 있게끔 해주는 부정성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다음으로, '차이'만이 존재를 규정하므로 내재성의 세계 내적인 운동원리로서 부정성(헤겔의 부정성) 역시 거부된다.

들뢰즈의 차이 개념은 특별히 이 두번째 부정성, 헤겔의 부정성과 경쟁관계를 가지고 있다. 차이는 헤겔이 말하는 부정성, 즉 모순이나 대립이 아니다. 헤겔은 세계가 스스로 운동하는 까닭을 “개념의 자기 운동”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스스로 운동하는 이 개념이 바로 부정성이다. (360)

 

   (361) '차이'란 바로 이런 부정성이 아니며, 오히려 '비관계'를 뜻한다. 빛과 어둠이 병행적으로 있다는 사실에서 번개가 생겨나듯 차이는 부정성이라는 대립('나'와 '극복해야 할 나 자신'의 모순)의 운동 없이 사물을 출현시킨다. 부정성과 달리 “차이는 본질적으로 긍정의 대상, 긍정 자체이다.” 차이는 서로 차이나는 항들을 그 자체로 긍정하지, 극복의 대상(부정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이런 차이 내지, 차이 나는 항들로부터 개별자의 발생을 기술하는 것이 들뢰즈의 개체화 이론이다. (361)

 

   (362) 들뢰즈는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스피노자를 해석하면서 자연 안의 힘들(사유하고자 하는 힘과 존재하고자 하는 힘)의 강도의 크기를 개별자(유한 양태)의 다양한 '본질'의 출현으로 이해한다. 스피노자에게서 자연의 힘의 역학적 측면(강도)을 개체 발생의 원인으로 제시하는 해석은, 스피노자가 채택한 '기하학적 방법'이 절대자의 (생산하는) 자기 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는(이럴 경우 스피노자의 절대자는 운동 없는 죽은 신이 된다) 헤겔의 스피노자 해석에 대한 반박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유한 양태의 발생에 관한 이러한 설명은 『차이와 반복』에서 개체화 발생 이론의 밑그림을 이룬다. ''강도적 크기의 본질적 과정은 개체화에 있다. 강도는 개체화하고 강도적 크기는 어떤 개체화 요인들이다.'' 힘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개체의 '본질'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힘의 '정도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힘 안에 내재하는 '차이'다(당연히 힘 안에 내재적 차이라는 요소가 있으니, 그 차이를 원인으로 힘의 다양한 정도가 가능하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차이가 개체 발생의 원인이다.' [# 나는 이 부분만 따로 수업시간에 독해하면서 라이프니츠와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토론은 라이프니츠와 들뢰즈의 차이 -즉, 라이프니츠 프로그램에서는 actual world와 possible world가 구분되어 있지만 들뢰즈에게는 그 모든 것이 구분되지 않고 들어있는 world가 존재한다.- 에 집중되었고 교수님은 들뢰즈가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메세지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유도했다. 따라서 추후 나올 것이지만 들뢰즈의 윤리학적 '이중긍정' 개념을 중심으로 중점 논의되었다.] (362)

 

   (362~363) 지금껏 철학에서 지배적인 설명으로 행사해온 개체화 원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를 통해 널리 알려진 '질료인'이었다. 형상이라는 일반적인 것에 질료가 개입해 개별자를 출현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경험 안에 결과로서 출현한 개체를 보고서 그것의 요소 중 질료를 개체화의 원인으로서 '상상'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결과를 모방해 그 결과의 원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원인이 결과를 닮았다는 것이며, 원인이 결과를 닮는 일은 상상에 입각한 추측 이상이 될 수 없다. 결국 질료인은 상상적이다.

개체의 본질을 발생하게 하는 원인인 차이는 그런 상상적 원인, 결과로서의 개체를 보고 상상해낸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의 질서에 입각한 사유의 산물이다. 가령 '허기'라는 하나의 개체를 보자. 이는 몸 안에 영양분이 양적인 차원에서 결핍되다가 그 양이 일정한 도(강도)에 이르면 발생하는 '질적으로 독특한 하나의 본질'이다. [# 이에 관련하여 아마도, 양적 투표를 통해 대표자가 질적 본질이 되는 것에 비유된다고 수업 중 누군가 말하였다.] 이런 식의 강도에 입각한 개체의 발생에 대한 이론은, 철학사적으로는 들뢰즈가 영향을 받았던 스코투스에게서 그 스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스코투스는 하나의 존재로부터 다양한 개체가 출현하는 것을 하얀빛으로부터 강도적 차이에 따라 다양한 색이 출현하는 것에 비유한다. [# 발표중 논의된 '색의 차이를 보여주는 수평으로 놓인 스펙트럼'과 교수님의 말 – A is, B is, C is 에서 is는 스펙트럼으로서 수평이며 똑같다. 즉 일의적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표현되는 색깔이 다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와 대조적이다. 범주에서 존재는 다의적이다.] [# 나는 여기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와 들뢰즈를 연결짓는 어떤 이론가를 본 듯하다. 그의 이름은 levi bryant다.] (362~363)

 

   (363) 강도적 크기는 개체의 '본질'을 출현시키지만, 이 본질에 대응하는 '실존'의 형성은 또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강도적 크기에 의한 개체의 본질의 출현을 '미분화(différentiation)'라 일컫고 이 본질에 상응하는 실존의 출현을 '분화(différenciation)'라 일컫는다. 본질에 대응하는 실존은 외연적 부분들의 합성을 통해 얻어지므로, 실존이란 본질을 표현하는 외연적 부분들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외연적 부분에 해당하는 어떤 물질(영양분)은 역시 외연적 부분에 해당하는 한 물질(사람의 혈액)과 결합하기에 적합할 수 있다. 이 물질들의 결합의 원인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며, 각각의 물질이 지닌 성격이다. 그러나 이 두 외연적 부분의 합성은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요컨대 실존하는 물질들을 주관하는 법칙은 그에 대응하는, 강도적 크기로서의 개체의 본질과는 별도의 성격으로 이루어진다. (363)

 

   (364) 헤겔식 변증법에서는 부정성이 항들을 관계 맺어서 종합된 새로운 항으로 발전하게 해준다. 반면 차이의 세계에서는 차이 나는 것들이 부정되지 않고, 계속 그 자체로 '반복'되면서 사물들을 생산한다. ''차이는 반복에 거주한다.'' 반복은 무엇보다도 시간적 개념, 즉 '되풀이되는 시간'이며, 주어진 상태들의 긍정을 조건으로 한다. 주어진 상태들을 긍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정의 대상, 즉 지양의 대상이 될 것이고 따라서 다시 되돌아오는 일, 곧 반복은 없을 것이다. (364)

 

   (368) '외연적 크기'와 달리 '강도적 크기'는 동질적 힘의 양의 변화에 따라 '질적으로 다른 개별적인 것'의 출현을 설명한다. [# 천개의 고원들] ..반복 속에서 서로 '비관계'인 (즉 서로 차이 나는) 원초적인 것들은 부정성을 통해 종합되지 않고, '공명'을 통해 종합된다. 공명은 칸트의 과제인 '종합'을 들뢰즈가 부정성 개념 없이 기술하는 방식이다. (368)

 

■ 추후논의

□ 들뢰즈 입문자들이 잘 헷갈려하는 것이 개념적 차이와 순수 차이의 혼동이다. 개념적 차이는 나와 영숙이(그런 애가 있다고 쳐보자)를 구별해준다. 그러나 순수 차이는 나도 이루다 말하고 규정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존재이다. 나의 신분증이 나를 대표해주는 건 아니지 않는가 ?

□ 고전 철학에서는 실체를 실재로 보고 그것을 존재의 근본적 상태로 간주했다. 그러나 현대 철학에서는 하이데거 이래 실재는 사건이다. 사건은 일회적이다. 그것은 소멸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존재라고 부르는 것이다.

□ 어떤 사건에 대해 재판을 한다고 해보자. 이때 들뢰즈 논리가 법정에 필요한 육하원칙을 따르는 actual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날 있었던 일을 사건명 xx라고 하고 그것을 기술하는 것은 사건 전체를, 사건의 차이를, 사건의 실재를 기술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사건은 우리가 진실에 대한 규명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는 identify되지 않는 차이가, 사건을 끊임없이 rewriting하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이를 논의할 때 나에게 의존하지 않는 사건이 그 자체로 있고 객관적 사건에 내가 연루된다라고 하는 바디우와 비슷한 구도가 이야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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