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알랭 바디우, 『윤리학 : 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이종영 역, 동문선, 2001을 기초텍스트로 한 2015년 2학기 수업)

 

10/ 진리들의 윤리학

 

추상적 주체가 없는 만큼 일반적 윤리도 없다. 즉, 칸트적 의미에서 어떤 본유관념적 뉘앙스의 주체가 없다면, 각개별적 주체가 처한 상황서의 구체적 윤리만 있다.

 

“그의 존재의 모든 것, 그의 몸, 그의 능력들이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진리가 자신의 길을 펼치는 데 사용된다”(53~54).

 

진리의 과정은 어떤 '결정'으로부터 유래하는가? 이제부터 사건적인 잉여적 부가물의 관점에서 상황에 관계하려는 결정으로부터이다. 이를 충실성이라고 부르자. (55) (55) 1905년 아인슈타인의 텍스트들 이후로, 만약 내가 그 텍스트들의 근본적 새로움들에 충실하다면, 나는 물리학을 고전적 틀 속에서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건적 충실성은 사건이 발생한 고유한 질서(정치적/사랑의/예술적/과학적) 속에서의 (사고되고 실천되는) 실질적 단절이다. (55) (55~56) 우리는 한 사건에 대한 충실성의 실재적 과정을 '진리' (하나의 진리)라고 부른다. 그 충실성이 상황 속에서 생산하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55~56) (56) 진리는 내재적 단절이다. ...'단절'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의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 -사건- 은 상황의 용법들 속에 있지 않고, 또 기존의 지식들로는 사고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진리의 과정은 상황 속에서 확립된 지식들에 이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56)

 

우리는 충실성의 담지자, 즉 진리의 과정의 담지자를 '주체'라고 부른다. 따라서 주체는 결코 과정에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는 사건이 생기기 '이전의' 상황 속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재한다. 우리는 진리의 과정이 주체를 도출시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6)

 

예술적 과정의 주체는 예술가(천재 등)가 아니다. 사실상 예술에 있어서 주체적 지점들은 예술 작품들이다. 예술가는 그러한 주체들의 구성에 참여(작품들은 '그의' 것이다)하지만, 결코 예술 작품들은 '그'에게로 환원될 수 없다. (57)

 

사건들이란 환원 불가능한 개별성들이며, 상황들의 '법에 대한 외재성'이다. 진리에 충실한 과정들은 매번 완전히 새롭게 발명되는 내재적 단절들이다. 진리의 과정의 국지적 경우들(진리의 '지점들')인 주체들은 특수하고 비교 불가능한 도출물들이다. (57) [# 도출물들 – 구조주의와 유사]

 

종국적으로 일관성이란 자신의 개별성(동물적인 '어떤 자')을 진리의 주체의 지속성 속에 개입시키는 것이다. 또는 알려진 것의 끈질김을 알려지지 않은 것의 고유한 지속에 봉사토록 하는 것이다. (61) [# 교수님 – 일관성은 끊어졌다가 다시 개입, 끊어졌다가 다시 개입하는 것. 어떤 자는 하이데거적 용법으로 das man이고 불어로 quelqu'un인데 영어의 anybody에 가깝다. 따라서 아직 주체가 안 된 자. 문맥에서 알려진 것의 끈질김이란 자기의 이해관심적 관심. 알려지지 않은 것이란 무관심한/순수한 관심.]

 

윤리는 '어떤 자'의 모든 존재를 구성하는 다양한 재료의 두 가지 기능 사이의 만성적 갈등에 의해 표출된다. 그 한 가지는 우리가 관성의 원리라 부를 수 있을 단순한 전개, 상황에의 귀속성이고, 다른 한 가지는 우리가 주체의 원리라고 부를 수 있을 일관성, 알려지지 않은 것에 의한 알려진 것의 결합이다. (62) [# 교수님 – 여기서 관성의 원리는 살던 대로 사는 것. 주체의 원리는 명명과 탐색의 과정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것에 개입하는 것]

 

의견은 참과 거짓에 아직 이르지 못하는 쪽에 있다. 왜냐하면 의견의 역할이란 단지 의사소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리의 과정에서 도출되는 것은 의사 소통되지 않는다. ...결국 진리의 윤리학은 '의사소통의 윤리학'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진리의 윤리학은 실재의 윤리학이다. (67) [# 여기서 의견은 공유되는 담론이다. 그것들은 내 고유한 말이 아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론에 반대되는 입장.]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물론 억압은 명백히 존재하고 있고, 극단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사건 이후의 충실성과 사물의 정상적 전개 사이의, 진리와 지식 사이의 전적으로 존재론적인 뛰어넘을 수 없는 부조화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적 구성에 참여하는 '나 자신'이 자신의 이해관심을 추구하는 나와 같은 자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69) [# 교수님 – 라깡과 다른 의미에서 주체가 분열되어 있다. 내 이해관심(스피노자식의 '코나투스')과 이해관심에 무관심한 나가 주체에는 공존하고 있다.]

 

상황 속에서의 근본적 단절이 진리의 실재적 과정으로부터 차용한 이름들하에, 공백이 아니라 '가득 찬' 특수성을, 또는 그 상황의 가정된 실체를 호출할 때, 우리는 진리의 시뮬라크르가 생겨났다고 말할 것이다. (90) [# 교수님 – 가득찬 특수성이란 보편성을 비꼰 것이다. 그것이 진짜 보편성이 아니라는 것. 보편적 이름이 아니라 시뮬라크르 이름에 개입한다면 그것은 가짜다.] (91) 시뮬라크르에의 충실성은 사건에의 충실성과는 달리, 자신의 단절성을 공백의 보편성에 의해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집합('독일인' 또는 '아리안족')의 닫혀진 특수성들에 의해 규제한다. (91) (92) 그리하여 시뮬라크르에의 충실성은 전쟁과 학살을 그 내용으로 한다. (92) [# → 폭력을 부른다.] (93) 흙, 피, 인종, 관습, 공동체에 대한 모든 언급은 직접적으로 진리에 반대하여 작동한다. (93) (95) 결국 악에 대한 우리의 첫 번째 정의는 다으뫄 같다. 악이란 진리에 대한 시뮬라크르의 과정이다. 그리고 악은 그 본질에 있어서 그(악)가 발명한 이름하에서 모든 자에게 행해지는 테러이다. (95)

 

의견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상황의 언어 이외에도, 진리의 기입을 허용해주는 주체적 언어(주체적 상황의 언어)가 존재한다. (100) (101) 사실상 이 점은 자명하다. 과학의 수학화된 언어는 과학에 대한 의견을 포함한 의견들의 언어가 결코 아니다. 사랑을 선언하는 언어는 매우 하찮은 외양(예컨대 '나는 너를 사랑해'처럼)을 갖지만, 상황 속에서의 그 힘은 단어의 일상적 용법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시의 언어는 저널리즘의 언어가 아니다. 그리고 정치 언어는 너무도 고유한 것이어서 의견들의 판단에 따르면 그것은 '경직된 언어'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의견들을 향한 진리의 힘이 실용적 명명들(객관적 상황의 언어)로 하여금 주체적 언어와의 접촉을 통해 굴절되고 변형되도록 강제시킨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사실이 기존의 의사 소통 코드들을 진리의 효과 아래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101)

 

“진리의 힘의 절대화에 따라 도출된 진리의 파국(104)”을 이야기한다. “진리가 전능한 힘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 종국적으로 뜻하는 바는, 진리 과정의 생산물인 주체적 언어가 상황의 모든 요소들을 명명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적 명명이 행해질 수 없는 적어도 하나의 실제적 요소가, 상황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다양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요소는 오직 의견에만, 상황의 언어에만 주어져 있는 것이다.”(104) “그것은 상황의 순수한 실재의 상징, 진리 없는 그 삶의 상징이다”(105) “즉 사랑에 있어서 성적 향유 그 자체는 진리(둘에 대한 진리)의 힘을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비모순적 사고를 전형적으로 표상하는 수학에 있어서는 바로 비모순이 명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와 집합성은 정치에 있어서 명명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명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파국적인 악을 도출시키는 일이다.”(105)

 

위로가기

badiouian

 

이 홈페이지에 존재하는 모든 바디우 관련 목록

 

01. 2015년 2학기 바디우 수업 : 진리와 주체

 

02. 2015년 2학기 바디우 수업 : 『윤리학』

 

 

 

 

 

  • Facebook Clean
  • Twitter Clean
  • Instagram Clean

© 2023 by CHEFFY. Proudly created with Wix.com

업데이트 구독하기

축하합니다! 사이트가 구독됩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