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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utside of philosophy >> 대학론, 교육론, 학교론 >> 대학과 국가의 관계
(아래는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 초반 몇 장에서)
Academic Keywords : Deveil's Dictionary for Higher Education,
“Corporat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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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을 위하여 계약임무를 수행하는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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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과 재정 제휴를 맺은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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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과 학위 프로그램들을 기업의 채용 요구에 맞도록 설계한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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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지원한 프로그램들, 연구원 장학금 그리고 교수진 채용 방침을 받아들임으로써 교육과정과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기업의 영향력을 눈감아주는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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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추구적인 기업의 가치관을 채택한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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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식 경영과 회계 기법들을 채택한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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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 사업의 일부를 기업들에게 효과적으로 판매하는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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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진이나 직원의 시간을 기업들에게 판매하는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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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급여를 주는 고문으로 교수들을 채용하고, 연구에 재정지원을 하는 기업들이 교수 구성원들을 흡수한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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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직원 노동의 산물을 팔기 위해 기업들과 계약을 맺은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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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직원들에게 기업문화를 주입하는 대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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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최상위 지배층(이사회)을 기업의 경영간부들이 지배하는 대학교들
<다음과 같은 대학교의 미래상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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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소비자는 항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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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교수진은 항상 쾌활하고 친절한 품행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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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교수진은 학생 소비자들에게 도전하거나 그들을 위협하거나 당황하게 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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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목들은 명백하고 보편적으로 이룰 수 있는 목적에 기초해서 학점을 매길 것이다. 수월성(?)과 질이라는 분할 가능한 통념들은 소비자 수행을 평가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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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진 노동의 모든 생산물은 기업의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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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없는 계약 종료가 교수진의 무반응이나 불복종에 대해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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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수진 구성ㅇ너들에게 과목의 교수 요목과 교과서가 무료로 제공된다. 과목 내용에 대해서는 경영진이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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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수진은 추정상으로 과잉 상태(?)에 있다. 그들의 봉사에 대한 필요는 매 학기마다 재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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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수진은 기업의 사명에 그들이 어떻게 더 잘 복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매년 제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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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수진 구성원들은 이 원칙들을 받아들이면 완전한 학문의 자유를 가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직해야 한다.
The Knowledge Factory: Dismantling the Corporate University and Creating True Higher Learning, S. Aronowitz (링크)
한편, 이책의 저자의 개략적 주장 : 선진 자본주의의 많은 긴장들과 모순들이 대학으로 옮겨졌다. 왜냐하면 대학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의 중요한 요소로서 법적, 정치적, 재정적으로 이제 국가에 직접 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및 대학교는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지지하는 3가지 기능(인력훈련과 고급노동력 개발/과학기술이전/미국 이데올로기의 함양, 촉진)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떠안게 되었고, 고등교육은 국가의 전반적인 유지기능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산의 사회비용이 되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의 한 요소로서 대학교는 국가 재정위기의 원인이자 해결책으로 그 위기에 연루되었다. 따라서 저자 바로우는 사유자본축적 촉진(자본주의 기능)과 민주적인 정치적 합리화 유지(대중접근성) 간의 모순되는 긴장이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하위체계 안으로부터 위기 경향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그 경향들은 고등교육체제를 포함한 국가장치들의 붕괴에서 드러나는 합리성 위기로 이제 주목할만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대학이 재정적인 면과 행정적인 차원에서 기업이 강조하는 사회적 효율성 논리에 종속되는 과정, 그리고 대학이 이데올로기적인 면과 군학복합체 형성과정에서 국가에 종속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장.
하나의 지적 전문직업적인 사회 유형으로서 지식인의 출현은 과학의 전임직으로서의 추구가 희귀한 물질적 자원의 사용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분명히 의미하고 있다. (베버, The Methodology of the Social Sciences) 개인의 수입, 석박사학위, 도서관, 강의실, 학회참석, 연구기금, 연구지원, 출판 그리고 다른 모든 요소들이 교수로서의 강의와 연구에 종사하는 가능성을 경제적으로 결정하는 실질적인 한계를 구성한다.
지식인들 사이에 도구적 질서는 일부 생산도구의 소유 여부에 따라서 항상 역사적으로 정해진다. 맑스는 이런 도구들을 "정신적 생산의 물질적 수단"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도구들이 이용되는 특정 조건과 특수 형식이 지식인의 노동 과정을 정의한다. 모든 사회에서, 예를 들어서 합법적으로 선전, 이데올로기, 또는 개인적 견해와 반대되는 교육과 과학적 사고로 간주하는 것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 지식인의 노동과정이다. 현대의 대학은 지식인의 자격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인가하고 고용하면서, 그들이 객관적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고 추정하는 사회적 실천에 종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보증한다.
현대 지식인들은 실질적인 생산수단을 거의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대학 내 존재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공적이거나 사적인 후원자들의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환경 하에서 "물질적 생산수단의 처분권을 가지고 있는 계급이 동시에 정신적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성을 가질" 가능성이 더욱 크다.
소유권 통제와 정신적 생산수단에 대한 대학의 제도적 규제가 조직적 관계들인데, 사회계급들은 이 관계들로 지식인의 노동과정에 지배력을 행사한다. 나는 이 사회적 관계를 "이데올로기적 권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