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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체철학의 개관 (철학과 굴뚝청소부가 참고됨.)

 

  1. 주체라는 범주는 근대 철학에서 가장 중심적이며 근본적인 범주다. 신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했던 것. 여기서의 주체는 어떤 이론적 명제도 이것에 근거를 두어야만 가능하게 되는 출발점으로 근대철학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

  2. 주체철학의 이분법 : 주체라는 말에는 언제나 '객체'나 '대상'이라는 짝이 따라다닌다. 결국 근대 철학의 출발점인 주체가 신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피조물인 자연 세계(대상)로부터 인간이 분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 주체인 인간이 대상인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주체/대상의 이런 근대적이 분할에 따른 것이다. 고로 인간에 대한 이론, 즉 인문과학의 발전.

  3. 이 이분법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 : '인식하는 주체가 인식되는 대상과 일치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이로써 주체가 대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 대상과 지식의 불일치 가능성 문제는 '진리'야말로 주체에서 출발했던 근대철학이 도달해야 할 목표로 설정하게끔 한다. [인식 대상과 인식 주관의 일치]

  4. 데카르트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아닌가, 즉 주체와 대상, 정신과 육체가 일치하는가 아닌가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을까?

  5. (1) 이성의 타고난 완전성 테제 : 이성의 타고난 능력인 본유관념은 완전한 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6. 데카르트에게 확실하고 완전한 개념의 모델은 수학이었다. 따라서, 어떤 지식을 수학적인 형태로 환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유관념과 일치하는 지식, 즉 진리다.

  7. 데카르트는 모든 사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 – 실체를 연장과 사유라고 한다. 연장은 물질-물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데, 어떤 공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모든 물체의 실체는 연장이다, 라는 말은 모든 물체는 어떤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는 말이다. 사유는 한 마디로 생각하는 성질이다. 이건 공간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장이란 성질과 구분된다. 정신의 실체는 바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데카르트의 철학은 두 개의 실체를 가정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원론'이라고 한다.

  8. 사물이나 감각 경험이 불완전하지만 인간의 이성은 완전한 것을 인식할 능력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그는 영혼(이성)에 우위를 둔다.

  9. 데카르트의 전제란 무엇인가? : '참'이란 개념을 전제로 한다. 즉 참된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전제이며, 그것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처럼 취급되고 만인에 골고루 나눠가져진 것으로 취급된다.

  10. 근대철학에서 신으로부터, 대상으로부터, 주체를 분리시킴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일치, 정신과 육체의 일치라는 문제. ; 대상에 일치하는 인식을 '진리'라고 했으며 이 '진리'가 철학이 도달해야 할 목표. 그러나 주체가 인식한 것이 대상과 인식하는지, 진리인지 어떻게 보증하느냐? --> 거울에 비치는 대상과 그걸 비추는 거울이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그 대상 본인과 거울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 결국, 두 개의 항만으로는 일치와 진리 문제를 알 수 없다. ; 이 딜레마를 요약하면, 인식주체아 인식대상을 나누고, 양자가 일치하는 게 진리라고 한다면, 어떤 지식이나 인식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결코 확인할 수도 보증할 수도 없다.

  11. 주체와 분리된 대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스피노자는 두 개의 실체를 가정하는 데카르트를 비판하고, 실체는 오직 하나만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개념/지식과 실제 대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양자가 일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나, 양자는 단일한 실체의 속성이어서, 애초부터 일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주장이다. ; 근거 ; 어떤 판단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알려면 진리를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 진리가 진리와 허위의 기준이다.

  12.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스피노자의 논의는 실체 / 속성이라는 두 개념으로 요약된다.

  13. 그는 데카르트처럼 두 개의 실체를 가정한다면 독립적인 두 개의 실체가 서로 일치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래서 그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사유'와 '연장', 물질과 정신이라는 것을 실체의 속성이라고 하였다.

  14. 스피노자데카르트가 부닥쳤던 '일치'의 문제를 어떻게 피해가는가? : 스피노자에게는 정신과 육체, 사유와 연장이 일치하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실체가 사유와 연장 등의 속성들을 통해서 '표현'되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즉 이 두가지 속성 모두가 실체가 갖는 본질을 '표현'하기에, 그것을 통해 우리는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이나는 두 명제가 하나의 동일한 원의 본질을 표현한다. 동일한 실체를 다른 측면, 다른 차원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양자가 동일한 것을 표현하는 한 그 본질에서는 당연히 일치하기 때문에, 데카르트를 당혹케 한 문제가 스피노자에게는 아예 발생하지도 않는 것이다.

  15. 그러나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 예컨대 반지름이 5인 원의 면적이 “25파이다” 혹은 “27파이다”라는 상이한 판단이 있을 때, 즉 하나의 속성에 대해 상이한 판단이 있을 때, 어떤 것이 대상과 일치하는가의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였다.

  16. 근대적인 문제설정과의 인식론적 거리 : 인식을 통해 진리에 이르려는 근대적인 주체에게 그건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출발점임을 가르쳐준다. (즉, 인식에 이르려면 이미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17. 버클리의 시각에서, 물질적 실체를 가정하면 그게 지식과 일치하는가라는 문제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이다.이 문제(근대철학의 딜레마)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물질적 실체=물질이란 개념을 없애 버려야 한다. 버클리에 의하면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각된 것 뿐이다."

  18. 버클리 자신이 정신이란 실체를 예외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는 점.

  19. 버클리는 지각하는 정신만은 지각되는 게 아니지만 존재한다고 했다. 즉 지각하는 주체, 인식하는 주체(데카르트)가 정신이란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 이런 예외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20. 은 사물을 보고 생긴 것은 인상, 그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게 관념이라 보았는데, 정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 관념과 인상의 다발만이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나' '주체' 자아' '정신'이란 말로 불리던 것에 대해서, 그것이 인상과 관념의 묶음, 지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했다. 결국 '나' 와 '정신'이라는 게 관념 다발의 도입으로 따로 없어짐으로써, 로크와 버클리조차 자명한 것으로 간주했던 근대철학의 출발점인 '정신' '주체'라는 범주를 해체시킨다.

  21. 은 근대철학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진리와 과학의 불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근대철학의 입지점인 주체 자체가 결코 안정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근대철학의 위기)

    은 주체를 관념 다발로 보며 그 다발이 믿음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믿음은 그걸 믿는 주체에겐 생생하고 안정적으로 간주되어 실질적 효과를 가진다. 이는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표상체계 = 이데올로기 = 담론의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다.

  22. 그러나 에게 믿음은 개인/주관적인 것일 따름이었으며 이 믿음을 형성하는 사회역사적 조건에 대한 이론을 그는 사고하기 힘들었다. 그가 근대철학 내부에 있는 것은 믿음을 주체인 개인이 갖고 있는 관념으로 본 점이다.

  23. 이성비판의 기획의 취지 : 주체가 출발점이 될 자격이 있는지, 자격이 있으면 무엇 때문인지, 주체가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지 묻는 것. 이 기획은 데카르트가 자명하게 전제한 것을 어째서 그게 자명한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고 이 기획 속에서 주체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중심 자리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근대적인 사고의 기반을 확고하게 했다.

  24. 칸트는 우리눈에 비친 것이 물자체와 일치하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걸 '그것'으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판단형식')을 연구하려 한다. (이에 따르면, 진리를 대상에서 찾을 게 아니라 대상을 만드는 우리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

  25. 진리 : 밖에서 찾는 게 아니라, 언제나 올바르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는 판단형식 = 선험적 종합 판단에서 찾는 것이다. 이것이 칸트가 흄이 해체했던 진리 개념을 재건하는 바이다.

  26. 칸트가 진리와 주체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기 위한 전략은 (1) 진리의 주관화 : 진리를 외물과 대상에서 찾지 말고 주체 내부에서 찾자 / (2) 주체의 객관화 : 모든 주체가 선험적으로 갖고 있으며, 경험이나 인식의 기초가 되는 필수적인 형식을 주체 내부에서 찾아냄으로써 그것이 모든 주체에 공통된 것=객관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7. [아래는 해체철학과의 연관]

    1. 1/ 진리를 주관화하는 전략. 주관 밖에 '물자체'가 알 수 없는 것으로 존재한다면,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과 그것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 No one knows. 따라서 진리란 오직 주관의 형식으로만 정의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리라고 간주하는 지식(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것은 경험하기 이전부터 '누구든 오인하는' 선험적 허위일 가능성은 없을까?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선험적 허위'라면 진리로 취급되어도 좋은 것인가?

    2. 2/ 선험적 주체에 관한 문제. 난점은 선험적 형식 자체에 있는데, 칸트의 범주가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되는 '선험적 형식'인가? 범주 이전에 범주를 나누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시간은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는' 것이며 공간 역시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구부려져 있으므로 중력장에 의해 다르게 만들어지고 '경험된다'.

  28. 헤겔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함으로써,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문제 설정을 세운다.

  29. 이때 현실은 주체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인식은 서로 분리된 양자를 사후적으로 이어주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물자체는 인식을 통해 표상되어야 할 어떤 것이 되지만, 그 표상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를 주체의 의식 외부에선 확인할 수 없는 불가지론에 빠진다.

  30. 물자체와 주관, 현실과 주체를 분리하지 않기 위해선 근원적인 통일을 처음부터 설정해야 함.

  31. 셸링 – 역시 주객의 동일성을 '절대자'로 생각하여 그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오히려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셸링에게 자연이 곧 주체요 정신. 헤겔이 그 자체가 객체기도 한 주체를 설정하는 부분에서 빚지고 있다.

  32. 헤겔의 절대정신 : '정신'이 들어가는 이유는 그 전체의 본성이 활동적, 산출적이란 점에서 주체로서의 정신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 셀링의 경우 정신을 자연과 직접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자연의 변화와 법칙 속에서 정신의 운동을 발견하는 '자연철학'이 중요해지나, 헤겔에게 있어서 절대자는 뭣보다도 '정신'.

  33. 주체 → 절대정신이 외화하면서 생김. But 정신에서 생긴 바 (주체는 정신과) 일치할 수 있음.

  34. 헤겔에게 '나'라는 것은 절대정신이 외화한 것(스피노자의 양태와 비슷)

  35. 헤겔은 대상을 정립하는 게 곧 진리는 아니며, 따라서 지식이 진리는 아니라고 한다.

  36. 지식에 대한 평가 기준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의식 (시대의식) 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

  37. 지식과 진리는 동일시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접하는 악순환은, 지식의 평가는 진리를 기준으로 하나, 이 기준은 지식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근대적 문제 설정의 딜레마에서 연유하여, 대상과 개념의 일치(진리됨)을 확인할 길이 없다. 헤겔이 여기서 강구하는 묘책은?

    1. [절대정신의 자기의식]

    2. 진리는 분명히 지식과 다르기에 대상-지식 관계의 외부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상 자체가 의식 내부에 있는 거라면, 대상과 개념의 일치로 정의되는 진리 또한 의식 내부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대상도 개념도 모두 의식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지식의 외부에 있지만, 의식 내부에 있다. 그렇다면 의식 내부에 지식과 지식평가 기준이 모두 들어있는 셈이다.

    3. 의식은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의식이 이 기준으로 지식을 평가한다. 그 지식은 대개 그 시대에는 진리로 간주되던 지식이다. 결국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진리의 기준이 되었던 지식 자체도 의식이 스스로 검사하고 재평가하는 것이다.

    4. 이는 의식이 갖고 있는 기준을 의식 스스로 다시 검사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다('자기의식'). 결국 진리란 이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 자체를 돌이켜 검사하고 정정해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리란 의식 또는 '정신 자신의 내적인 관계'다.

    5. 또한,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에 있어서도, 진리에 대한 판단에 앞서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받아들여 의식이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38. 근데 헤겔 자신의 진리 기준 역시 역사적으로 정정되고 폐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에 헤겔 진리 개념은 장벽에 부딪힌다.

  39. 역사 속에서 진리의 기준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지식이 검사되는 게 아니라 헤겔의 진리 기준을 위해 역사가 완성이란 이름을 얻고 지식의 정정도 중지하는 사태

  40. 결국 근대철학이 갖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

  41.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이란 결코 확인될 수 없기에, 완전한 진리란 없고 지속적인 정정을 거쳐야 or “내가 곧 진리”라는 확인할 수 없는 선언을 반복.                                                                                                                 위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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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년-1학기 강의정리

  • ㄴ 주체철학의 개관

  • ㄴ 근대철학의 딜레마(avec과학주의)

강의(discussion) _ 신지영 교수님 

  • 근대 철학의 딜레마
 
  1. 근대철학의 주 문제가 인식론의 형태로 제기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 중세 때는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창조론>이 설명했고, 무엇이 진리인가는 <계시론>이 보증했다. 중세 때는 진리의 실천이 교회와 성직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예전에는 신의 계시에 의해 보증되었던 주 객의 일치가,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속성의 것이 되었다. 고로 철학은 주체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지, 인간의 인식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입증해야 했다. 주체가 신에게서 독립하려면 그에 상응하여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2. 과학주의 : 근대로부터 성행. 어떤 지식도 자신이 과학적임을 입증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존재할 권리를 얻음. 이 사고방식은 데카 철학에서 가장 중심적이고 주된 지위를 차지.

  3. 근대 철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과학주의인 까닭은 무엇인가? : 신에게서 독립하려는 근대 철학자들에게, 갈릴레이에 의해 본격적으로 급진전되고 있던 과학혁명은 희망이었다. 과학혁명에 의해, 신의 말씀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신에게서 벗어난 주체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바로 이 과학이었다.

  4. 과학주의라는 중세에 대한 근대의 해결책의 한계는 무엇인가? : 과학이 도달해야 할 목표점이 진리라면, 어떤 지식이 과학인지 아닌지는 과학 자신이 보증하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진리라는 범주가 야기한 근대철학의 앞서 말했던 딜레마에 빠져들어간다. ; 주체와 대상 사이에, 진리를 판단해 줄 어떤 절대적 존재로서 제3자가 없다면 양자의 일치(진리)를 보증할 수 없다. 물론 이 제3자역시 진리를 인식할 능력이 있는 절대적 재판관이어야 하므로, 다시 결국 신을 끌어들이게 된다. ; 주체와 대상을 나누고 양자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철학에서는 그 안에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그러한 문제.                                                                                                                                    위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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