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 이념
(1) 자연과학의 정밀성 이념 vs. 후설의 엄밀성 이념
a. 자연과학을 비롯하여 개별과학은 세계를 여러 영역으로 나누어, 그것을 정확하고 정밀하게 다루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한 이상은 자연에 대한 경험적 일반화와 그 일반화를 수학화하는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잘 실현되고 있었다.
b. 여기서 '정확성', '정밀성'이라는 개념은 사실을 탐구하는 실증과학의 학문적 이념을 잘 표현한다.
c. 후설이 자기책임에 근거한 새로운 철학적 이념을 발견하려 하면서 '정밀성'의 이념과 구분되는 이념으로서 제시한 것이 현상학적 학문 이념인 '엄밀성'이다.
d. '엄밀성'이라는 개념은 절대적 토대 위에 근거한 보편학을 수립하며 모든 학문을 궁극적으로 정초하기 위한 것이다.
e. 이러한 현상학적 학문 이념의 방법적 원리는 '명증성'이다. 명증성은 지향적 삶의 보편적인 근원적 형식을 가리키며, 현상학의 탐구 영역을 지시하는 선험적 개념이다.
f. 흔히 학문 활동에서 진리란 판단과 판단대상 사이의 일치로서 확증되며, 그런 확증은 여전히 다른 정당화에 근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현상학적 이념을 수행할 명증성의 이념은 정당화와 확증의 토대가 자기자신에게 있는 인식의 지평을 의미한다.
(2) 자연과학의 이념에 영향을 받은 근대 철학 즉 인식론 vs. 후설의 현상학
- 서양근대철학은 과학과는 구별되는 자신의 문제영역을 인간의 인식능력을 반성하는 것에서 찾는다. 인식은 인식주체와 객체, 주관과 객관, 의식 '안'과 '밖'의 관계로 성립한다. 그러므로 인식에 대한 반성은 인식의 주체인 자아, 의식에 대한 탐구를 함의한다.
- 인식론이 지닌 주관과 객관의 구분은 단순히 그 자체의 구분으로 끝나지 않고, 실재와 현상, 실천과 이론, 육체와 마음 등의 근대적 이원론의 구조와 맞물려 있다. 근대적 사고에 대한 비판은 이 이원론의 고리를 끊거나 해체하는 과정을 함의한다.
-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적 문제는 인식론 자체로부터는 해결되지 않는다. 과연 이러한 이분법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설에게 있어서 이러한 인식론의 문제를 벗어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던 사람이 브렌타노이며 그 개념은 지향성이다.
ㄱ. 데카르트
a. 근대 이후 철학은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였으며 그것은 '자연의 철학(형이상학; 플라톤)'과 '신의 철학'에 대한 회의로 표출되었다. 선구자인 데카르트는 과학이 방법론으로서 채택한 수학의 정밀성을 철학적 방법론의 모델로서 삼았다.
b. 데카르트는 절대확실한 지식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방법적 회의를 수행한다. 그것은 다른 명제들을 연역해낼 수 있는 수학의 공리에 해당하는 절대 확실한 명제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c. 데카르트는 철학에 요구되는 보편학의 이념을 수행하기 위해 방법적 회의를 통해 코기토에 도달하고, 이로부터 신, 세계에로의 연역적 추리를 수행하고 있다.
d. 후설에 의하면 '나는 생각한다'는 이 지평이야말로 모든 학문 활동을 정초할 토대이며 명증성의 이념을 수행할 토대이다. 그러나 후설이 보기에 데카르트는 치명적 문제를 가지고도 있다.
ㄴ. 경험론
a. 대상은 우리의 지각을 통해 관념으로 주어진다. 어떻게 대상이 의식에 주어지는가 하는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 경험론이다. 따라서 경험론은 대상의 성립에 대한 발생론적 설명양식을 취한다.
b. 로크는 당시 세계의 운동을세계를 구성하는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관한 법칙을 통해 설명하던 자연과학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아, 그것을 마음을 설명하는 논리로까지 확장하여, 의식 삶을 외적 지각이나 내적 지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복합으로 해석하고 그 자료를 전체가 되도록 결합하는 것을 밝히려 했다.
c. 흄은 내적 관찰에 근거하여 자아를 경험적으로 분석하며, 심리학이 하는 의식의 '자연화'를 그대로 수행한다.
ㄷ. 칸트
a. 인식의 성립조건은 대상의 성립조건이다. 대상은 인식의 성립조건에 의해 규정받으며, 바로 그 인식조건에 의해 대상으로 드러난다.
b. 인식론은 일차적으로 사물자체와 현상을 구분한다. 이런 구분에서 인식론은 우선 사물자체와 현상의 관계, 특히 사물자체에 대한 문제를 과제로 가지게 된다. 인간 인식의 최초의 조건은 감각이며, 감각을 자극하거나 촉발하는 원인이 되는 사물 자체의 존재가 문제가 된다. 여기서 사물자체의 존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인식론자의 중요한 과제이다.
c. 지각-감각의 영역(신체적 조건을 기반으로 하는) vs. 개념 규정 능력(의식과 이성의 영역에 기반한) -> 이 둘의 관계가 칸트에게도 역시 문제가 된다.
ㄹ. 현상학자
a. 세계와 의식의 선험적 상관관계에 대한 해명을 통해, 세계는 의식에 대해 존재하며 하나의 구성된 의미체라고 이야기한다.
b. 후설은 데카르트 철학을 비롯하여, 그에 영향받은 로크, 그리고 인식론의 문제의식을 극단으로 밀고 간 흄 모두 근대 과학의 심리학주의적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