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크
-
경험주의를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냄. 그의 철학은 데카르트가 새로운 장을 열었던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신에게서 독립한 주체 = 존재와 인식, 가치의 새로운 중심으로서의 = 그리고 진리라는 인식의 목표) 과 과학혁명의 획기적 효과(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가장 커다란 길)를 지반A으로 한다.
-
로크의 경험주의 : 로크는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허구적인 원리, 개념, 사고 등을 제거하고자 한다. 그에게 경험과 관찰만이 과학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 보였다.
-
이것이 같은 과학주의라 해도 데카르트와 다른 점은 데카르트는 경험과 관찰은 불확실한 것이므로 이성에 내재해 있는 본유관념과 그것에 의거한 연역적(수학적) 지식을 통해 지식으로 이르려 했던 점이다.
-
로크는 경험과 관찰에 의하지 않은 지식, 개념 = 신학적인 우주론은 오히려 올바른 관찰에 입각한 과학적 지식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본다.
-
로크는 유명론적 전통에 따르면서 A와 같은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을 따른다. 따라서 로크는 유명론과 근대적 문제설정의 결합을 통해 데카르트와 다른 독자적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
로크가 보기에 본유관념(by데카르트)은 중세적이고 스콜라철학적인 잔재였다. 불은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본유관념)이 아니라 불이 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고 경험함으로써 배운 것이다. 산수와 같은 자명해보이는 수학적 지식 역시 타고난 것이라곤 하기 힘들다. 우리의 지식은 모두 경험의 산물로, 경험 이전의 이성(by 데카르트)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백지일 것이다.
-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완전한 개념'은 경험에서 추출된 것으로, 불완전한 모습들을 관찰하여 불완전성을 제거하고 완전한 모습을 그려낸 것일 뿐. 보편은 개별에서 추상된 것이며 그 공통된 특징에 붙인 이름일 뿐이라는 유명론의 논지와 유사하다.
-
로크는 모든 보편개념(일반개념)은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것이며, 다만 이름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라고 한다.
-
단순관념은 저 누런 금속을 보고 '금' or '노랗다'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복합관념은 이 단순관념들을 결합해서 만든다(황금산). 단순관념은 사물에 의한 자극으로, 복합관념은 단순관념들을 오성understanding이 결합해서 만든다.
-
신과 인간같은 보편개념은 모두 복합관념으로 인간의 오성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닌 명목적인 것이다.
-
이 부분은 데카르트의 본유관념과 이성/진리 개념, 보편 개념에 대해 유명론의 입장에서 로크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로크는 이것을 통해 본유관념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이려 하는데, 경험과 관찰에 입각한 지식을 만듦으로써다.
-
로크의 딜레마 : 실체에 관한 것(1), 진리에 관한 것(2)
-
(1) 로크는 우리의 감각이 경험을 통해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로크가 환각이나 착각에 의한 경험을 생각하는 게 아니므로, 경험을 통해 '나'를 자극하는 요인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물을 보고 '빨갛다'고 지각했따면 나로하여금 빨갛다고 생각케 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물론 경험이나 관찰이 잘못되어 나중에 수정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또는 그게 원래 빨간 건지, 아니면 다른 건데 우리가 그렇게 감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하게 생각케 하는 무언가(가령 빨간색인지 주황색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태양)는 분명히 존재한다.
-
이때 태양은 물질적 실체이고 빨간색 주황색 등은 단순관념인데, 물질적 실체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해서 단순관념이 생기도록 한다. 물질적 실체는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우리의 감각적 경험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든 불변인 채로 있을 것이다.
-
한편 올바른 인식이 성립하기 위해서 태양을 보면 언제나 태양으로 인식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이처럼 인식의 불변적인 주체를 로크는 또 하나의 실체 = 정신적 실체라 한다.
-
결국 로크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실체를 받아들이며, 이는 우리가 정신적 실체로서의 태양(내 이해 : 일관성)을 성립시킴과 동시에 물질적 실체(우리의 환각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 : 꿈과 과학의 구분) 로서의 태양 자체도 성립시켜야 함을 뜻한다.
-
근대철학은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나누며, 로크처럼 (꿈이 아니라) 진리로서 과학을 추구하려 할 때, 물질적 실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가 로크의 딜레마이다. '실체'와 같은 보편개념은 오직 이름일 뿐이라는 유명론에서 시작해서 두 개의 실체가 있어야 한다는 반유명론적 주장으로 회귀한다.
-
(2) 진리 = 제1성질. 태양의 숫자를 경험하는 것이나 방의 온도를 경험하는 것이나 '경험'하기는 마찬가지이나 달라진다. 이때 로크는 방의 온도는 느끼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성질(2성질)이지만, 태양의 숫자는 주체와 상관없는 성질(1성질-> 물체 자체에 속한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리가 가능한 것은 1성질 때문이며 이로 인해 인식과 대상이 일치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가 가능케 된다.
-
1성질은 어떻게 해서 진리를 제공해줄 수 있으며 우리가 1성질을 동일하게 경험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물이 갖는 일종의 본유성질(타고난 성질)로서 사물에 속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
그는 뒤집힌 형태로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되돌아온다. 유명론에 반하는 주장으로.
-
로크는 표면상으로는 근대철학과 과학주의라는 두 지반위에 서 있으나 사실상은 근대철학과 유명론의 두 지반위에 서 있다.
-
중세의 유명론 : 보편개념이 실재한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제출되었고, 실재하는 것은 개별자라는, '존재론적' 성격의 사상이었다. 이것은 보편자에 대한 개별자의 우위를 주장했다. 신학적 문제 설정 내에있으면서 본질적으로 신학과는 화해하기 힘든 것이어서 억압받기도 했다.
-
로크에 이르러 유명론은 근대적 문제 설정에 포섭되게 된다. 인식주체가 신에게서 독립해있고 '이 주체가 진리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유명론은 개별적 사실들에 대한 관찰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유명론은 '인식론적' 성격의 사상이 된다. (근대화한 유명론)
-
유명론이 중세에는 신학과 충돌했다면, 이제는 근대철학의 과학주의와 충돌하게 된다. 과학이란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임을 보증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 로크가 만들어낸 실체와 제1성질은 유명론의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로크의 딜레마2) 근대화한 유명론의 모순은 이후 버클리와 흄을 통해 경험주의 사상이 발전하면서 더욱 증폭된다.
버클리(로크를 비판하면서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
(1) 실체 개념에 대한 비판 : 로크는 모든 복합관념은 오성이 결합한 것이고 명목적인 것일 뿐이지만 실체만은 예외로 둔다. 이렇게 예외적으로 실재하는 물질과 정신 실체를 버클리는 예외조항으로 인정할 수 없다.
-
(2) 1성질 비판 : 로크는 대상의 성질은 모두 인식주체의 경험이요 주관이라 하면서 1성질만 유독 물질 그 자체에 속하는 객관적 성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버클리가 보기엔 경험되지 않은 성질이란 알 수 없는 성질인 것이다.
-
버클리의 시각에서, 물질적 실체를 가정하면 그게 지식과 일치하는가라는 문제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이다.이 문제(근대철학의 딜레마)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물질적 실체=물질이란 개념을 없애 버려야 한다. 버클리에 의하면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각된 것 뿐이다."
-
여기서 생겨나는 문제 “당신 부인은 지금 안 보이는데(지각되지 않는데) 그럼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각해주시기 때문에 집사람은 존재하고 있다오." -->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각하고 계시다면 이름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 이것은 유명론이 실재론으로 바뀌는 기묘한 논법을 드러낸다.
-
한편 버클리는 '물질'이란 실체를 제거하지만, 정신이란 실체는 인정하고 이 실체가 지각하는 것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로크와 마찬가지로 유명론에 유보 조항을 다는 것이다.
-
중세의 유명론 : 실재론에 대항하는, 반관념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로크 역시 데카르트 철학의 관념론적 성격에 대한 비판.
-
버클리에 이르러 유명론은 정반대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는 로크가 남겨 두었던 물질이란 실체를 제거한다. 이는 사실 개체의 실재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유명론이 보편개념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개체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는데, 모든 보편개념이 이름일 뿐이라면 개체만이 실재한다고 할 때 '실재성'역시 보편개념이므로 제거되어야 한다고 버클리는 주장하는 것이다. (유명론과의 연속성) 그러나 유명론이 본래 개체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면 (신학에 대항) 개체의 실재성을 제거하는 버클리의 주장은 유명론의 부정이기도 하다.
-
이때 '존재한다' '지각한다'는 말조차 보편성을 갖기 떄문에 제거하므로, 버클리 자신이 정신이란 실체를 예외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는 점. 그 결과 유명론은 관념론으로 전환되었다(물질이란 개념을 제거함으로써 정신과 그 정신이 지각한 것만을 세상에 남겨두므로).
흄
-
진리를 추구한 근대철학에서 흄같은 회의주의가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
흄 역시 과학주의로 과학의 일종으로 간주되던 심리학을 기초로 '경험적 인간학'을 구성하려고 한다. 여기서 경험과 관찰이 일차적 위치를 차지하므로 그는 경험주의 전통에서 출발한다.
-
흄은 여러 가지 관계들을 구분해서 그중 과학이란 이름에 걸맞은 확실한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그 중 <인과관계>는 확실하지 않은데 그는 인과관계란 “연접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붙어 있는 두 인상(현상)의 관계에 대한 습관적인 판단”으로 본다. 그는 '인과관계' '동일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는 과학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법칙은 인과관계에 의해 표시되므로 인과성 없이 어떠한 과학도 법칙도 생각할 수 없다. 결국 그는 과학의 불가능성과 진리의 불가능성을 입증하며 '회의주의'란 이런 도달 불가능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
흄에 의한 주체 철학의 해체
-
버클리는 지각하는 정신만은 지각되는 게 아니지만 존재한다고 했다. 즉 지각하는 주체, 인식하는 주체(데카르트)가 정신이란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흄은 이런 예외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
흄은 사물을 보고 생긴 것은 인상, 그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게 관념이라 보았는데, 정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 관념과 인상의 다발만이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나' '주체' 자아' '정신'이란 말로 불리던 것에 대해서, 그것이 인상과 관념의 묶음, 지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했다. 결국 '나' 와 '정신'이라는 게 관념 다발의 도입으로 따로 없어짐으로써, 로크와 버클리조차 자명한 것으로 간주했던 근대철학의 출발점인 '정신' '주체'라는 범주를 해체시킨다.
-
흄은 근대철학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진리와 과학의 불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근대철학의 입지점인 주체 자체가 결코 안정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근대철학의 위기)
-
그러나 그가 인간에 대한 과학을 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음을 볼 때 문제설정 자체는 근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가 근대철학의 문제 설정에서 출발했고 확실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엄밀히 검토하다보니 유명론적 사고의 해체 효과를 최대로 작동시키게 되었는데 그 결과 그는 근대철학의 한계선에 도달한 것이다. 그는 <인성론>의 결론에서 이러한 딜레마를 표한다.
-
흄은 때로 근대적 문제 설정의 경계 밖으로 넘어간다. '믿음'에 대한 이론. 참된 지식, 진리 대신에 믿음이란 개념이 들어서는 것(인과관계가 습관 – 인상과 관념을 결합하여 어떤 지식을 형성하는 우리).
-
믿음은 힘을 가지며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효과를 가진다. 또한 그것은 견고하고 확실하고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 개인에게 그것에 입각해서 행동하게 만든다. 흄은 믿음의 개념이 갖는 영향력, 효과의 문제를 포착하려 한다.
-
믿음에 대하여 근대 철학은 전형적으로 허구, 비진리로 다루나 흄은 새로운 사고법을 보여준다. 흄은 어떤 지식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이 지식이 그걸 믿는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갖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흄은 진리의 문제 설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 이상을 요약해보자.
1) 유명론은 로크에 의해 근대적 문제 설정으로 포섭되었고 결과 그것이 가지고 있었던 반관념론적인 성격이 근대 철학내부의 딜레마를 드러내고 결국 그것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게 된다(버클리 흄). 후자에게서 유명론은 관념론 혹은 회의주의로 전환된다. 경험적 지식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경험주의가 반대물로, 경험이라는 것은 도대체 믿을 수 없고 진리를 형성할 수 없다는 반대물로 되었다.
2) 흄은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라는 개념, 진리라는 개념을 해체해버린다. 이 위기가 이후 근대철학을 규정한다. cf. 스피노자는 근대적 문제 설정 자체를 비껴 가고 애초부터 그 외부에 섰기 때문에 외면당했던 것이다.
3) 흄은 주체를 관념 다발로 보며 그 다발이 믿음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믿음은 그걸 믿는 주체에겐 생생하고 안정적으로 간주되어 실질적 효과를 가진다. 이는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표상체계 = 이데올로기 = 담론의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나 흄에게 믿음은 개인/주관적인 것일 따름이었으며 이 믿음을 형성하는 사회역사적 조건에 대한 이론을 그는 사고하기 힘들었다. 그가 근대철학 내부에 있는 것은 믿음을 주체인 개인이 갖고 있는 관념으로 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