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겔
의의 avec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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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경우 진리의 기준의 의식 내부에 있는 것으로 주제 내부의 보편적 동일성인 여러 형식들이 일치하므로 진리가 보장된다고 했다. 그런데 헤겔의 경우 절대정신이 외화를 시켜두고 자기를 인식하는데 이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절대정신이 안다고 보았다. 칸트와의 차이는 칸트는 개인 기준, 헤겔은 공공기준이라는 점으로, 헤겔에게서 의식이란 우주 내부의 것으로서, 나는 나에게 치환을 해서 보고 있낀 하지만 개인의 의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정신이 나의 주관을 외화해내고, 인간인 이상 우리는 그 과정 밖에는 모른다고 설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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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이전 논리학은 being과 논리의 혼동의 역사였으며, 아리스토는 동일률 모순율 배중율을 통해 영원불변, 변화x, 동일한 것이 대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hegel은 모순되는 것에 대해 논리의 사유 대상으로 삼고 변화를 인정하며 변증법이란 tool을 창안해낸다.
『철학과 굴뚝청소부』로부터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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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함으로써,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문제 설정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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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철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적물음-1 : 사물자체라는 현실과 인식주체를 분리하는 것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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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현실은 주체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인식은 서로 분리된 양자를 사후적으로 이어주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물자체는 인식을 통해 표상되어야 할 어떤 것이 되지만, 그 표상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를 주체의 의식 외부에선 확인할 수 없는 불가지론에 빠진다. 그렇다고 피히테처럼 자아 안에 양자를 끌어넣음으로써 해결하는 주관주의 역시 대안이 아니므로, 피히테같은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현실(객관)과 주체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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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철학에 대한 헤겔의 물음-2 : 칸트는 진리의 기초를 확보하기 위해 선험적 능력(인식 이전의 인식의 능력)에 대해 연구했다. 그러나 헤겔은 그렇게 함이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을 배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곤란하다고 본다. 인식 능력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인식이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식 능력을 연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 인식의 기초는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절대정신의 변증법(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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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체와 주관, 현실과 주체를 분리하지 않기 위해선 근원적인 통일을 처음부터 설정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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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히테 – 자아를 절대화해서 이것을 성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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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링 – 역시 주객의 동일성을 '절대자'로 생각하여 그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그러나 피히테의 생각처럼 자아가 비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비아가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님. 그는 자아를 근거로 자연을 도출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보고 오히려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셸링에게 자연이 곧 주체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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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링의 자연 : 자연은 정신이자, 자연 안에 있는 정신 자체의 산물인 물질임. 자연은 자신을 객체로 정립하는 주체. 자연은 곧 무한한 활동이며 개개의 현상들은 이 절대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 셸링에게 자연 현상은 정신이나 역사가 속하는 계열을 포함. 헤겔이 그 자체가 객체기도 한 주체를 설정하는 부분에서 빚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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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절대정신 : '정신'이 들어가는 이유는 그 전체의 본성이 활동적, 산출적이란 점에서 주체로서의 정신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 셀링의 경우 정신을 자연과 직접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자연의 변화와 법칙 속에서 정신의 운동을 발견하는 '자연철학'이 중요해지나, 헤겔에게 있어서 절대자는 뭣보다도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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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절대정신은 스스로를 외화(소외)하여 자연이나 사회, 역사 등의 객체(대상)이 된다. 자연이나 역사는 이 정신의 '표현'. 이때문에 비록 헤겔에게도 자연철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회를 다루는 법철학이나 역사를 다루는 역사철학에 비하면 매우 부차적인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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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회나 역사로 외화된 절대정신은 역사의 발전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발전과정을 통해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한다. → 다시 자기에게로 복귀하는 절대정신[자기-내-복귀]. =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절대정신의 실현이란 목적을 향해 발전하는 '목적론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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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대상의 변증법 ; 절대자의 변증법 ; 정신에서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는 이 원환운동, 그러나 끝날 때는 좀더 높은 단계로 고양되는 이 원환운동을 흔히 '부정의 부정'이란 말로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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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링과 헤겔의 차이 : 셸링에게는 자연 = 정신이었다. 그러나 헤겔은 동일성과 함께 '차이'를 포착하려 하며, 자연과 정신의 차이, 정신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단계상의 차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차이를 사상 안에 포섭된다. 그러나 푸코나 들뢰즈 등의 비판에 의하면, 헤겔 사상에서 차이란 사실상 동일자의 포섭 능력을 과시하는 요소일 뿐이며, '변장한 동일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그들이 계몽주의적 이성을 비판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스피노자 장점 + 칸트 장점 = 헤겔.
스피노자 ( 주체가 없다, 자유의지는 허구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 ; 신/실체 → 절대정신이 됨 )
칸트 ( 자연질서를 인간이 초월하기에 인간의 주체성 and 자유 확보 가능. )
헤겔 ( 주체 → 절대정신이 외화하면서 생김. But 정신에서 생긴 바 (주체는 정신과) 일치할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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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게 '나'라는 것은 절대정신이 외화한 것(스피노자의 양태와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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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신은 자기 인식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모름. 이 상태에선 주객도 없음. → 외화하면 자연/사회/역사가 나타남.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음. 정신의 대상이 생기게 되어 정신의 자기인식 가능. 이렇게 주객이 나중에 생김. → 정신이 자기인식하면서 반성하며 → 다시 외화함. → 이것이 모두 구현된 쪽으로 감.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이 진리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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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읽을 수 있다는 문장에 동의할 것이며, 이런 관점에서 지식을 '대상에 대한 주체의 연관'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의식 내에서 만들어지는 연관이다. 그러나, 헤겔은 대상을 정립하는 게 곧 진리는 아니며, 따라서 지식이 진리는 아니라고 한다. 이 지식이 진리인지 확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칸트는 개개의 지식 이전에 존재하는 선험적 인식 능력을 기준으로 제시하려고 할 것이다. 헤겔은 지식에 대한 평가 기준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의식 (시대의식) 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고 한다. 이로써 헤겔은 지식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장을 열었다. 이것은 가령 지구의 운동에 대한 물리학자의 주장의 시비는 19세기에는 뉴턴 고전물리학이 그 기준이 될 것이고 중세 초기에는 또 달라질 것이다. 진리의 기준은 이미 성립한 하나의 지식이 제공하는 것이며, 그때마다 이미 옳다고 간주되는 지식이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피노자에게 헤겔이 받은 영감이다(진리는 이미 가지고 시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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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진리는 동일시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접하는 악순환은, 지식의 평가는 진리를 기준으로 하나, 이 기준은 지식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근대적 문제 설정의 딜레마에서 연유하여, 대상과 개념의 일치(진리됨)을 확인할 길이 없다. 헤겔이 여기서 강구하는 묘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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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분명히 지식과 다르기에 대상-지식 관계의 외부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상 자체가 의식 내부에 있는 거라면, 대상과 개념의 일치로 정의되는 진리 또한 의식 내부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대상도 개념도 모두 의식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진리는 지식의 외부에 있지만, 의식 내부에 있다. 그렇다면 의식 내부에 지식과 지식평가 기준이 모두 들어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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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의식이 이 기준으로 지식을 평가한다. 그 지식은 대개 그 시대에는 진리로 간주되던 지식이다. 결국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진리의 기준이 되었던 지식 자체도 의식이 스스로 검사하고 재평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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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의식이 갖고 있는 기준을 의식 스스로 다시 검사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다('자기의식'). 결국 진리란 이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 자체를 돌이켜 검사하고 정정해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리란 의식 또는 '정신 자신의 내적인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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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에게 의식과 정신은 어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동하는 절대자, 절대정신이다. 헤겔은 진리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라고 하며,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진리의 기준을 계속 정정해가는 과정이다. 진리를 확인하고 보증해주는 것이 헤겔에게는 발전해가는 절대정신 자신이 된다. (의의 – 이전의 진리에 대한 독단주의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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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과 스피노자 : 헤겔에게 절대정신은 스피노자의 '실체'이고 외화되어 만들어내는 자연이나 사회 역사는 '양태'라 했을 때, 스피노자의 이 개념을 헤겔은 주객의 통일성을 이루어가는 목적론적 과정에 적용. / 또한,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에 있어서도, 진리에 대한 판단에 앞서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받아들여 의식이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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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적용은 그런데 스피노자의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벗어나는 '변형'이다. 스피노자가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든다고 보아 거부했던 주객이라는 근대적 범주의 통일과 화해를 위해 실체/양태 개념이 복무하게 된 것이다. 연장과 사유라는 속성의 일치라는 명제도 역시 주체와 대상의 일치란 명제로 전환되며, 헤겔은 이를 '절대정신의 자기실현'이라는 목적론적 과정에 포섭하는데, 이 목적론은 스피노자의 <에티카>의 구절들로 비판될 수 있는 것이다 [근대화한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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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헤겔 자신의 진리 기준 역시 역사적으로 정정되고 폐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에 헤겔 진리 개념은 장벽에 부딪힌다. 이는 논리적인 난점이나, 진리 개념에 대한 입론을 제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난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 기준 자체의 정정 과정을 파악하는 입론의 현실성과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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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를 방치할 수 없었던 헤겔 : 진리와 지식의 변증법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라는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 과정이라 할 때 그런 헤겔의 주장이야말로 절대정신의 실현을 목격한 지식이라면 그 과정의 종착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 정정될 이유가 없는 절대적 진리가 된다. 헤겔에게는 그의 지식이 형성된 당시야말로 역사의 종착지가 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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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진리의 기준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지식이 검사되는 게 아니라 헤겔의 진리 기준을 위해 역사가 완성이란 이름을 얻고 지식의 정정도 중지하는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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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근대철학이 갖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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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이란 결코 확인될 수 없기에, 완전한 진리란 없고 지속적인 정정을 거쳐야 or “내가 곧 진리”라는 확인할 수 없는 선언을 반복.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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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동일성처럼 환원되는 한 모든 개체는 그것이 갖는 보편성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변화는 목적으로 환원된다. 나아가 자연 사회 역사는 관념으로 환원된다.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기에 그 안의 어떠한 내용도 절대적인 게 된다. 자신이 포섭할 수 없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전능한 이성, 이게 철학의 종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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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신은 그것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원인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을 결과적으로 다 더하면(동일성으로의 포섭) 절대정신이 된다. 여기서 차이란? ~A와 A의 차이가 A' 안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헤겔의 존재도 역시 동일성의 논리 안에 있는 까닭은, 들뢰즈가 말하듯 진정으로 차이나는 것은 포섭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 교수는 설명한다. 로고스(말)로 규정+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라해서 없는 게 아니다. 존재를 표현할 때 그것에 대한 논리적 표현으로는 한계가 있다. 헤겔은 문장 통한 규정 → 재규정의 과정을 창안한 것으로서, 동일화의 과정을 창안한 것이라고 비판될 수 있다.)
질문지 시간
Q1. 절대정신의 작용을 인간이 어떻게 목격하는가? : 경험적 자아로서는 지양과 합은 파악 가능하다.
Q2. 헤겔에게서 진리는 변화되면서 완성되는 것임. 근데 여기가 어떤 끝인지 인간은 유한한 정신이니까 모른다. 절대정신이 최초로 상정되었기 때문에 절대정신은 알겠지만 어쨌든 나는 모른다.
Q3. 세계대전은 선인가 악인가? : 어떤 역사적 사실도 단면을 추출하듯이 이해할 수 없다. 헤겔 맑스는 그 방향(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가고 있다, 갈 것이라고 본다. 헤겔은 역사가 정의로운 것을 향해 “인간의 절대적 존엄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하며, 이러한 목적론은 현실과 좀 맞지 않는다. 절대정신의 관점으로는 누가 피해자라고 할 수 없고 존재 전체의 차원서 보면 특정한 것이 선,악하다고 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강의(discussion) _ 신지영 교수님
Hegel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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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독일관념론 - 헤겔 - 논리학 강의 [20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