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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철학 꼴레쥬에 관한 니시야마 유지의 글 (哲学への権利)
인문학의 형태와 의의
<학제화의 융성>
차이나는 전문분야를 횡단하는 학제적인 연구는 전부터 존재한다. 일본 대학에서는 1991년 대학설치기준의 개정 뒤 커리큘럼 개혁이 일어났으며, 학부, 학과 자체가 학제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을 들고, 학제적인 명칭으로 변경되는 일이 일어났다. 전통적인 학부의 조직형성이 재편되어, '문학'이나 '철학'이라는 낡은 간판이 '국제문화', '인간문화', '국제교양'이라는 새로운 4문자 간판으로 바꾸어졌다. 2009년도에 '인간'이 들어간 학부는 144, '정보' 115, '국제' 49, '문화' 79개로, 전통적인 명칭인 '문학부' 133, '인문학부' 60에 필적하는 기세를 보인다. 학부재편의 이유는 여러가지다. 새로운 대학상을 제시함으로써 수험생을 모은다고 하는 경영상의 이유부터, 국제화나 정보화가 진행되는 와중 노동시장에 걸맞는 만능형 인재를 육성시키기 위해, 그리고 과목 선택의 자유도를 늘린 커리큘럼에 의해, 학생의 유연한 배움이나 주체적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서 등이다. 다만, 대학교사가 시간을 들여 연마해 놓은 학문적 이념으로부터가 아니라, 시류에 맞춰 대학의 인기나 취직대책, 학생의 시선을 의식한 학제적인 학부가 신설되는 경향도 있었지 않을까.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가치의 다양화가 다종다양한 상품을 생산해내는 것에 호응하듯이, 인문학의 형태도 다양화하고 복잡해졌다. '비교문학', '지역연구', '컬쳐 스터디즈' 같은 학제적 연구가 모두 미국에서 탄생한 것은 흥미 깊은 사실이다. 카야트리 스피박이 『어떤 학문의 죽음』에서 지적했듯, '비교문학'은 일단 제2차대전중에 망명한 유럽 각국의 지식인에 의해 형성되었다. '지역연구'는 냉전 영향하에, 종래의 학과를 넘어선 '지역' 개념에 기초한 공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서 창출되었다. '컬처 스터디즈'나 '포스트 콜로니얼 연구'는 1960년대 아시아계 이민이 증가한 결과 생겨난 신영역이다. 이러한 학제성의 창출은, 그러나 글로벌 자본주의와 연동하는 그 '새로운 교의(도그마)'로서 기능하는 것은 아닐까? 자본의 운동에 발맞춘 가치의 다양화와 궤를 같이 하면서, '앎의 실천이 무한하게 상대화되는' 경향이 진행되는 와중에, 학제적 연구는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학제성과 영역교차>
학제성이 칭양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국제철학 콜레쥬의 이념은 흥미깊은 사례로 비쳐진다. 콜레쥬의 주목적은, 다른 학문영역의 갖가지 연구자 사이의 창조적 대화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 학문영역을 상호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으로, 어떤 종류의 학제성(interdisciplinarité)을 일관된 커리큘럼으로서 구축한다기보다는, 연구 분야간의 영역교차(intersection)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창출하려는 시도이다. 창설 당시의 자료에는, “교차나 교착이라는 모티프는 콜레쥬에 있어서의 일종의 헌장”이라고까지 적혀 있다. 주변부의 영역에도 철학적인 물음을 내는 것으로, 철학을 영역횡단적인 다양성으로 여는 것이 목적이다.
영역교차의 성공례 중 하나는, 번역가 앙드완 베르망에 의한 번역학 세미나이다. 1984 89년에 개최된 세미나에는 학생, 번역가, 연구자, 정신분석가들이 모여, 베르망은 번역 개념이나 번역사를 재검토하고, 모국어와 외국어의 관계, 철학에서의 번역의 물음에 대해 강의했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서의 교환을 묻는 번역학은 문학이나 언어, 문화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기와 타자를 둘러싼 철학이며, 무의식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석론이기도 하다. 번역학은 다른 학문영역의 협간에서 생성하는 동적인 학인 것이다. 이러한 번역의 물음은 콜레쥬가 제창한 국제성에서도 중요하여 베르망의 번역학은 중요한 세미나로 위치잡아졌으며, 그 자신도 콜레쥬를 학문의 영역교차가 실재하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영역교차를 나타내기 위해서, 데리다는 '인접(limitrophe)'이라는 언어를 선택하고 있는데, 이 말은 라틴어 limit(경계)와 그리스어 trophos(기르는 것)로 구성된다. 물어지고 있는 것은 자폐적인 하나의 지평이 앙니라, 양분이 부여되고, 계속 성장하는 경계이다. 이 동적인 인접성의 물음은, 외재적 및 내재적인 방법으로 세워진다. 즉, 철학과 다른 학문영역과의 관계성, 철학이라는 학문영역 그 자체의 변형이라는 이중의 의미에서, 철학의 인접성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콜레쥬는 '철학'이라는 낡은 간판을 버리지 않는다. 콜레쥬의 프로그램은, '철학/예술' '철학/정치' '철학/과학' 이라는 철학과 무언가의 관계로 각 섹션이 구성된다. 또한, '철학/철학'이라는 섹션도 설비되어, 철학이 완결된 이론적 체계가 아니라, 자신을 계속 묻는 내적 활동상태임에 역점이 두어진다. 불문학자 이와노가 명확히 했듯, '철학이 온갖 학문을 근거짓는 한 편, 온갖 학문 가운데 이미 철학적인 것이 잠재하고 있다. 이러한 전체와 부분의 탈구축적인 상자 안의 상자 구조에서, 철학은 지속적으로 특정한 장소를 가지지 않는 운동일 수 있게 된다'.
흘끗 보면, 이러한 철학의 다양화의 시도는 단순히 학제화의 조류에 부응한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데리다는 오히려, 일부러 시대착오적인 호칭으로, 이 시도를 '철학에의 회귀'나 '철학의 재각성'으로 표현한다. 실제로, 1960년대 이래, 인류학이나 언어학, 정신분석이라는 인문 과학이 활기를 띠는 가운데, 철학의 학문분야로서의 한계가 현재화해버렸다. 다른 새로운 분야의 지견과 공동적이지 않고서는, 철학은 인간의 과학으로서 공헌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전후의 고도경제성장이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대립,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가 크게 변동하는 가운데, 철학에 의한 새로운 세계관의 제시가 요구되게 되고 있었다. 다만, '철학에의 회귀'라는 표현은 철학의 복권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서의 철학적 실천을 함의한다. 일단 데리다가 주의하는 것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철학의 패권주의적 자기규정이다. 철학의 위기가 이야기되는 것은, 왕왕 이러한 철학적 전능성의 전도가 아닐까. 데리다는 시대의 추세에 타협한 결과, 철학의 생명유지를 위해 그 전문영역을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철학은 모든 학문의 인접성을 산출하는 힘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묻는다. 전통적인 학문영역을 융합하여 학제적 분야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낡은 간판' 속에서 어느 정도로 학제성의 맹아가 잠복하고 있는가, 라고 묻는 일은, 현재의 대학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학제성의 다른 이름>
컬쳐럴 스터디즈와의 비교를 그린 본장은, 일단 미국에서의 상영에서 물의를 빚었다. 뉴욕대 비교문학과에서 교편을 잡는 미하일 얀포리스키는 '미국에서는 대륙철학이 컬쳐럴 스터디즈나 비교문학 등에 흡수되어, 준-학과적 대우를 받고 있음을 이 작품(이 영화)으로부터 생각하게끔 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문학자 브루노 보스텔은, '어째서, 지금 다시 철학인가? “철학은 통치자의 입장이 아니라 다른 학문분야와 연휴한다”라고 얘기되는데, 그것은 프랑스 철학의 국민적인 전통에 의한 것이 아닌가. 어떤 권위를 동반하는 철학의 규정이 있고, 콜레쥬의 이념에 침투한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본작의 인터뷰이의 자극적인 비판에 대해서, 미국의 컬쳐럴 스터디즈야말로 데리다의 사상을 받아들였으므로, 그 학제적인 관대함을 고려해야 한다는 난처한 반론도 제시되었다.
과연 이 작품의 인터뷰로부터는, 데리다가 제창한 '영역교차'와 컬쳐럴 스터디즈의 '학제성'이 명백히 대비되어 있고, 더구나, 서구권과 영미권의 적대관계를 희화화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다만 데리다의 본의로서는, 후자의 학제성을 수용한 다음에, 이것을 철학의 문맥에서 전개할 것을 목표로 했다. 그가 심려하는 것은, 패키지화된 기존의 학문분야가 모여서, 세계를 독해하기 위해 편리하게 도구화하는 듯한 류의 학제성이다. 데리다는 60년대 미국 대학과 관련을 맺고 있고, 이미 학제성의 공과 죄를 숙지했을 것이다. 오히려, 제도적으로 경직화된 프랑스 철학 상황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 영미권의 학제성을 그 나름대로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쨌든, 유럽대륙과 영미권, 그리고 일본에선 '철학'의 사회적인 입장이나 필요성은 상당히 다르다. 까닭에, 철학자 미야자키 ()가 지적하듯, '일본어로 철학하는 자가 국제철학 콜레쥬의 이념을 일본의 문맥 속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개하면 좋은가. 질문되는 것은, 철학이라는 말에 구애되지 않고 어떤 “앎의 이름”을 발명 가능한가, 혹은 기존의 이름에 의거한다고 해도, 그 사용법을 어떻게 발명 가능한가, 가 아닌가'?
<인문학의 사명>
학제화의 흐름을 받은 인문학은 급속하게 변용하고, 그 존재의의가 의문시된다. 인문학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과잉과 함께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다른 학문분야와 비교하여, 인문학은 수익성, 효율성, 탁월성이라는 사회 경제적 논리로부터는 자율적이며, 그래야만 한다고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이다. 인문학은 그 생존을 걸고 사회에 호소하고, 그 유용성을 소리높여 주장해야만 한다. 인문학은 애초에 재야의 직업과 관계가 깊으며, 작가, 저널리스트, 비평가, 영화작가, 미술가 등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양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응하여, 인문학은 그때마다 그 제도나 내실을 변용시켜 가며, 가치를 산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공계의 산학연휴와는 다른 방법으로, 인문학은 대학제도 틀 밖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탐구하는데, 그러나 이러한 과잉된 모험은 견실한 연구활동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자연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은, 갖가지 현상의 법칙성을 보편적인 방법으로 해명한다. 한편, 인위적 구축물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사회과학은 정치 경제 문화의 글로벌화를 받아, 더 포괄적인 이론구축이 요구된다. 이에 반해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자기반성적으로 생각하는 학문분야이다. 인문학에 있어서는, 자연의 보편성과 정치경제의 글로벌화의 협간에서 인간성을 탐구하는 것이 과제이다. 더욱이, 인문학에 있어서는, 인간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온갖 컨텍스트를 독해하는 기법이 요구된다. 만년의 사이드가 『인문학과 비평의 사명』에서 문헌학에의 신뢰를 주장한 것처럼, 인문학의 사명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독해의 가능성에 있는 것이며, 이 점에서 인문학은 세속적이고 민주적이고 절대적으로 열린 힘을 가지게 된다.
대학에서의 연구교육을 둘러싸고, '무슨 의미가 있는가' '뭐에 역할하는가' 라고 묻는 일은 많다. 그런데, 인문학에 관해서는 '어떤 정동을 얻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20세기를 돌이켜, 인문학은 고전에 기초한 보편적인 인간성을 탐구한 전통적인 작업을 초월하여 나와 버렸다. 고전의 규범에 기하여 '인간(humanity)'의 단수적인 의미를 묻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인간성(humanities)의 흔들림 속에서 인간이 되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은 의미나 유용성을 도출하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삶에 임하는 느낌이나 삶의 입체감을 제공하는 분야이다. 인문학이 가져다주는 정동은 삶에 대한(사는 것에 대한) 방향성을 시사한다. 인문학이 의미나 유용성과 섞이지 않는 것은, 정동을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동조차도 평가의 대상이 된다면, 학문적인 자유는 소실될 것이다.
인문학에 있어서는, 인간의 정신활동의 가능성에 기하여 참된 것의 탐구가 행해진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절대적인 해답을 가지지 않는 이상, 중요한 점은 인간의 본성을 무조건적으로 되물어가는 작업이다. 인문학에 있어서 철학의 존재의의는 특히 여기에 있다. 철학자 ()와의 대화에서는 철학의 사명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는 철학을 통하여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것의 의의를 강조했다. 개념을 제공하는 일은 단순히 추상적인 작업이 아니라, 구체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전망을 여는 일이다. ()는 또한 '음악의 연주와 음악의 연구는 다르다. 그러나, 철학을 연구하는 것은 항상 철학 그 자체이다. 철학의 끝없는 자기반복적인 특질을 옹호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에 호응해서, 내 생각으로는, 대답을 성급하게 찾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거짓된 물음을 점점 축소해나가면서, 물음을 물음으로서 적확하게 세련시키는 일이 철학의 의의이다. 우리 주변에는 적든 많든 수많은 물음이 넘치고 있고, 우리는 쓸데 없는 물음을 무심코 껴안게 된다. 타당한 대답을 얻는 일이 불가능할지도 모르나, 그러나, 일정한 제약이나 규칙 가운데, 적확한 사고방법으로 계속 물어가는 일이 절실하다.
<사고의 상처, 건강의 창조>
근년, 일본에서는 '힘'을 키워드로 한 계몽서가 화제가 되어, 뇌과학의 유행에 동반한 '뇌력'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대학의 학부교육에서 최저한 확보되어야 할 교양도 역시 '학사력(학부력)'이라고 명명되었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앎'을 향수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약속된 '힘'을 손에 넣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 듯 하다. 그것은 이른바, 생존에 역점이 놓여진 자격이다. 학부나 학과에서 무엇을 가르칠까라는 조직의 시점에서가 아니라, 학생이 '무엇이 가능하게 되는가'라는 각 사람의 능력의 시점에서 학위의 질이 보증되고 있는 것이다. 타자키 ()에 의하면, 이러한 시세와는 다르게, '철학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일이 알 수 없게 되는 것,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 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유발한다. 철학이 왕왕 사회적 분업의 논리와 섞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본래적인 위험성 때문이다'. '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게'로의 이행만이 인간의 능력인 것은 아니다. 학문만이 아니라, 일이나 취미에 있어서, 연애에 있어서, 지금껏 '할 수 있었던' 일이 '할 수 없게 되는' 경험을 우리는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할 수 없다'와 '할 수 있다' 사이에 멈추어 서서 생각하는 일,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를 물음으로서 완만하게 껴안고 살아가는 일도 다른 잠재적인 힘으로서 중요하다.
이러한 능력과 무능력의 긴장상태는, 실은 '교양'이라는 것에 관계하는 것이 아닐까? '교양(bildung)'은, 형태와 모양(bild)을 습득하는 것으로, 자기를 세련시켜가는 작업이다. 타인의 일시적인 모방으로 해 넘기는 것과는 달리, 형태의 습득에는 갈등이나 고통을 동반케 된다. 그것은, 새로운 자기의 형태를 획득하려고 하는 격투이다. 다만 생각건대, 자기의 형태를 충실하게 해서, '본래의 자기'로 도달하는 일이 최종적인 목적은 아니다. 갖가지 형태를 습득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형태를 버리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허무를 경험한다. 이것은 '할 수 없다' '알 수 없다'라는 무능력을 경험시킨다. 따라서, '교양'에 있어서는, 형태의 점진적인 습득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허무와 절실히 대면하는 것도 중요하다. 형태 만들기와 형태 없음이라는 모순하는 두 개의 자신을 받아들여 가는 태도나 기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교양'이다.
물음을 탐구해가는 일은, 살아가는 와중 세계에 대한 강한 관계성을 가지는 것이다. 세계에 대해 묻는 걸 멈추지 않을 때, 철학의 단서가 열린다. 나의 이미지로는, 이것은 '상처'를 짊어지는 것과 같다. 그 경중은 차치하고서라도, 한 번 짊어지면, 사고의 상처는 전처럼 아물지는 않는다. 이전의 건강을 돌이키는 건 불가능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건강을 창조할 수는 있다. 묻는 걸 멈추지 않는 사고의 상처는 누군가의 상처와 공명하여, 그리고 여행자들이 인사를 나누듯이, 물음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나서는 사라져간다. 상처없음에로 회귀하는 것이 불가능한 채, 상처 부위에서 자기가 바깥으로 열리듯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한 사고와 신체의 벌어짐(열림)이 아로새겨진다. 그 점에서, 어떤 종류의 쾌활이 동반되는 철학이라는 상처는, 실은 기묘하게 건강한 병이라 할 수 있다.
경제원칙과 무상성
중세의 창설 이래로, 대학은 종교와 정치 권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왔다. 지금, 대학을 좌우하는 것은 경제나 경영 이론이다. 대학은 고객에 상품을 제공하듯,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하여야만 하고, 애초에 대학 자체가 상품으로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지식경제와 대학>
근 20년간, 지식이나 정보를 사용한 상품이 경제 중심을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한 흐름은, 대학의 연구교육도, 실용적 지식 자원을 공급하는 거점으로서 위지지었다. 그 원인 중 하나로서, 미국 대학의 산학 연휴에 의한 영향이 있다. 애초에 미국 대학은, 나라나 주 뿐만이 아니라, 기업이나 일반대중으로부터도 자금제공을 받아서, 어떤 종류의 사회적 긴장관계를 가진 연구교육이나 운영을 행하여 왔다. 19세기말에는 록펠러나 카네기 등의 기업가의 재단으로부터, 2차대전중부터 냉전까지는 군으로부터, 연구자금이 대학에 흘러 들어왔다. 일단 큰 전환기가 된 것이 1981년의 바이 달러법의 제정이다. 이 법률에 의해 대학은 연방정부의 공적자금에 의해 연구성과를 올린 것의 특허를 받고, 자기들만 독점 가능하게 되었다. 일전에 공적 보조금에 의한 연구성과의 라이센스 수입은 정부의 관할이었으나, 금후는 대학이나 연구관계자에게 귀속되게 된다. 즉, 대학은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얻으려고 하여, 대학 자체가 하나의 기업체가 되어 간다.
80년대 경제의 글로벌화 경쟁이 진행되고, 대학은 지식경제의 거점으로서, 기술 혁신이나 새로운 산업과 고용을 산출하는 것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산학연휴는 유럽 나라들로부터 칭찬되고, 일본에서도 90년대 말부터 지적재산에 관한 법정비가 진행되었다. 확실히, 특허를 얻기 쉽게 하는 일은 연구자의 인센티브를 높이며, 사회에서도 지식을 유효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연구의 시장화나 상업화가 진행되다 보면, 연구성과를 숨기거나, 그 공유를 거부하는 경향이 커지게 된다. 즉 '만인의 진리'가 배타적으로 판매 가능한 '나의 진리'로 변용해 버린다. 애초에 대학에서 탐구되는 진리가 누구나 참조 가능한 공적인 것이어야 한다면, 현재의 대학자본주의의 추세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 앎의 공공성에의 배려이다. 학술의 private science화는, 대학이 산출한 앎의 보편성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대학 이념의 변질>
지식경제에 있어서 고등연구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운데, 관리운영(administration)이나 통치(governance) 논리와 실천의 침투, 연구교육기관의 자율성(autonomy)확대의 요청, 교육의 질 보증(quality assurance)의 요구, '고객'(학생과 그 가족)에 대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의 의무, 연구의 탁월성(excellence)의 국제경쟁이라는 갖가지 조건이 현재 대학을 근본적으로 규정짓고 있다.
알파벳으로 적힌 이 단어들은, 최근 자주 사용되는 경영용어이다. 이 점으로부터, 대학의 존재를 규정짓는 것이 경제적 조건임이 명확해질 것이다. 기업 통치(corporate governance)는 기업의 조직운영을 감시하고, 그 부정행위를 막는 기능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이 기능은 '대학은 누구 것인가'라는 물음을, 가장 첨단적인 방법으로 대학의 전통적인 자치 이념에 들이댄다. 대학을 통치하는 주체는 더는 대학교직원에 그치지 않고, '관리운영'의 역할을 둘러싸고, 서비스 이용자로서의 학생으로부터 학장 선고 회의 등의 위원, 독립행정법인이라면 문과성이나 재무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해관계자(stakeholders)에로 열리게 된 것이다. 대학은 객관적인 자료나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관계자가 그 활동의 타당성이나 성부를 평가하고, 판단을 내리는 '설명책임'을 진다. '질보증'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과 안정성을 보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학에서는 교사나 수업의 질, 사무원의 대응, 캠퍼스 환경의 충실 등이 그 지표가 된다. 더욱이, 대학이 고도 자본주의의 내셔널한 인적 자원을 조달하는 장소로 바뀌고 있는 현재, 질이 보증된 학생을 산업사회의 한 재료로서 송출해내는 목적 의식도 암묵리에 조장된다. 연구교육 활동은, 국내적 및 국제적인 시점에서 '탁월성'의 지표에 의해 수량화되고, 평가가 정해진다. 탁월성은 연구교육의 성과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공헌도 등 온갖 이질적인 요소를 비교 가능하게 하는 '척도 없는 척도'이며, 대학에 경제적인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것에 절대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19세기 초두에 훔볼트는 근대적 대학의 이념으로서 '연구와 교육의 통일'을 제기했는데, 이러한 이념의 수행은 곤란해졌다. 요컨대,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관료적 요청에 응하려 함으로써, 대학은 왕왕 '관리운영'이 '연구와 교육'보다도 우선되기 때문이다. '관리운영'의 이론은 '연구와 교육의 통일'을 실효시키고, 오히려 양자를 공리주의적으로 구별하고, 각각의 대학이나 학부를 연구와 교육에 효과적으로 나뉘어 갈랐다. 이미 고도경제성장기에, 기술화와 대중화는 대학의 제도적 내실을 확실히 변용시켰다. 대학조직이 대중화하고 거대화하는 가운데, 국제적인 연구 경쟁으로부터 지역 산업과의 연휴까지, 교양 교육으로부터 취업 지원까지 다양한 차이나는 목적을 가지는 다원적인 대학에로 현저하게 이행되었다.
더욱이, 근년의 대학자본주의화의 흐름 밑에서 생겨난 것은, 대학 안팍에 있어서의 분열상황이다. 근대적인 대학론에서 대학의 이념을 가능하게 해 온 것은, 학문의 유용성과 무용성(교양교육과 직업교육 등)의 대립, 모든 학문(자연과학과 인문과학 등) 사이의 대립, 교원과 학생의 협동 작업, 대학과 그 외재적 세력(국가, 사회 등)의 긴장관계를 포괄하고 통합하는 시점과 전망이었다. 근대적인 대학 이념이 소실되는 것은, 이 대립이나 협동들, 긴장들 안에 갖가지 분절선이 명확하게 새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 이처럼 대학이 지식경제의 거점으로서 자본주의와 연동함에 의해, 수익성이나 효율성과는 먼 인문학은 더욱이 홀로 남겨져 있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역경에 대해 인문학이 주의할 것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가 합의한 듯이, '인문학은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역할한다'라는 발상에 집착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무용의 쓰임'이라는 문구로 누군가를 설득 가능할 만큼, 인문학의 위광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용성의 가치를 경시하지 말고, 유용/무용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류하고, 양자의 착종된 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얘기하는 것이 요구된다. '무용의 쓰임'으로 자기규정하면 할 수록, 인문학은 고전적인 대학론으로 더 후퇴전을 해야 할 것이다. 이과와 문과 사이의 도랑이 깊어지고, 각 대학관도 분열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자를 연결하는 타당한 이념과 구체적인 제도관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에서 전정훈(?)이 지적했듯이, '신자유주의에 원흉을 두고 인문학의 위기가 얘기되지만, 이전 시대에 과연 인문학은 어느 정도 내실이 풍부했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의 곤란은 모두, 그 외적요인 때문으로는 돌릴 수 없다. 학제적 연구나 공동연구 이념이나 성과는 세련되어 왔는지 어떤지, 젊은 인재 육성은 적절히 기능하고 있는지 어떤지, 공평하고 적절한 룰에 따라 연구 교육의 향상이 이루어지는지 어떤지, 인문학 그 자체에도 물어야 할 과제는 있다.
<시간과 자유 ㅡ 겸무 보증 제도>
수업부담이 경감되는 국제철학 콜레쥬의 겸무 보증 제도에 대하여 철학자 ()는, '돈만이 아니라, 시간을 부여하는 제도는 멋지다. 대개의 경우, 평가는 돈과 결합되나, 평가에 대하여 시간에 대한 보상이 있어도 좋다'고 흥미로운 지적을 했다. / 콜레쥬 딜렉터가 되면, 겸무 보증 제도에 의해, 아그레가시옹을 가진 고교교원은 15시간의 수업부담이 7, 5 시간으로 반 절감되어 왔다(아그레가시옹을 가지지 않는 교원은 18시간에서 9시간, 그랑제꼴 준비학교의 교사는 8시간부터 4시간으로 반감). 수업부담은 반분이라도 급여는 전액 보증된다는 제도이다. 그들은 남은 시간을 연구에 쓰며, 콜레쥬에서의 세미나를 담당했다.
대학 교사에 관해서는 부담경감은 없으며, 그들은 주 6시간의 수업부담에 더하여, 콜레쥬의 세미나를 더 담당한다. 다만, 밀접한 연휴관계에 있는 파리 8대학의 교사는, 대학 세미나를 콜레쥬의 담당 세미나와 같은 틀에서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증가는 되지 않는다. 겸무 보증 제도는 콜레쥬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적 어소시에이션이나 노동조합에서도 활용되어, 큰 역할을 달성해왔다. 다만, 수업부담의 반감은 콜레쥬만의 장치로서, 이것은 미테랑 정권 하의 예외적인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현재, 사르코지 정권 밑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진행되어, 겸무 보증 제도는 비효율적이라고 적용단체가 제한되기 시작하고 있다. 예싼 조직법(LOLF)의 개정에 동반하여, 콜레쥬는 2009년도로부터 겸무 보증 제도가 이용할 수 없게 되어, 고교교원의 활동이 곤란해졌다. 고교 교사는 철학연구에 몰두할 여유가 있다면, 학교에서의 교육이나 관리의 직무에 전념해야 한다는 셈이다. '사회 가운데 자기에게 할당된 장소를 벗어나지 마라, 너는 너 자신이어라' 라는 효율화의 명법은 개개인의 아이덴티디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비판적인 사고의 맹아를 꺾어버린다.
철학, 넓게 말하면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비교할 때 아주 많이 예산이 들지 않는 분야이다. 인문학은 고액의 실험기재나 연구 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자기내성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며, 광의의 텍스트 독해실천을 주로 하기 때문에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인문학에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텍스트의 정밀한 독해를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참가자 전원이서 텍스트를 한 행씩 해석해가는 독서회에 나가면, 세상과 비교하여 정말로 천천히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차이나는 언어표현에 기하여 독해하고 사고하는 것으로, 다른 것이나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윤리적인 훈련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독특한 속도가 인문학의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한 편, 인문학을 둘러싼 시간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취직까지의 짧은 기간에 학부생이 받는 교육, 경쟁적인 방법으로 성과 공표에 몰리어지는 대학원생이나 교원의 연구활동, 인문서의 꼬리잇는 빠른 출판 등, 어느 경우에도 시간이 느려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역시 시간이 있다'와 '거의 시간이 없다'라는 두 개의 시간성 가운데 현재의 인문학이 놓여 있다. 까닭에, 어느 쪽인가 단일한 시간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가적인 시간과 절박한 시간 사이에서 인문학의 맥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요구된다.
<무상성>
국제철학 콜레쥬는, 어느 세미나나 강의도 무료로 일반공개되지만 학점을 취득할 수는 없다. 또한, 가르치는 쪽도 무보수로 일하므로 각 딜렉터는 콜레쥬에서 급여를 받을 수 없으므로, 기본적으로 대학이나 고교에서의 일로 생활해야 한다. 콜레쥬에서는 가르치는 쪽도 배우는 쪽도 무상성의 원칙을 관철한다 할 수 있다. 변호사 등의 전문가가 직업상의 지식이나 기능을 살려, 사회공헌의 볼런티어 활동을 행하는 일은 '프로보노'라고 불린다. 구미에서는 그 수는 서서히 증가하고 있으며, NPO의 발전에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되고 있다. 콜레쥬의 딜렉터는 단순히 개인적인 볼런티어가 아니라, 제도에서 규정된 일정한 사회적 입장을 6년간 담당하는, '본직장과는 다른 부차적인 일은 무상이라는 일종의 봉사 활동'이다. 누델망은 '콜레쥬는 커리어를 쌓기 위한 발돋움대가 아니다'라고 명언하는데, 그것은 물론, 콜레쥬 가운데서 승급이나 정직이 없기 때문이다. 콜레쥬의 적극적인 연구교육활동이나 국제적인 활약은, 어떤 형태로 각 딜렉터의 동기가 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기존의 대학조직에서는 담당할 수 없는 참신한 연구에 도전할 수 있음은 콜레쥬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무상성 원칙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가령 금전상의 되돌아옴은 없을 지라도, 콜레쥬에서의 활동을 통해 어떤 사회적 승인이 얻어지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문학자 ()는, 학생을 고객으로 간주하고, 학생의 만족도를 우선시하는 현재 대학의 경향에 다른 견해를 보였다. 본래, 배움은 무상적인 행위이며, 고객을 전제로 하는 경제활동과는 섞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는 또한, H. D. 소로우의 『숲에서의 생활』 머릿장인 '경제'를 대학비판으로서 풀이하며, 고액의 수업료를 지불하는 대학에 다니는 의의와, 재야의 지혜자와의 대화로부터 무상으로 배우는 의의는 얼마나 다른가, 라고 물었다. 소로우는 '철학과 동의어인 생활경제학'이라고 재야의 실천지를 칭양했는데, ()는 그러한 지혜를 대학 속에 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 술했다. 다만, 사회학자 ()는, '고도 자본주의는 새로운 갖가지 제도를 급속하게 삼키고 활용해 간다. 배움의 무상성의 숭고함만을 주장하면, 교원의 무상 서비스화를 촉진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흐름에의 저항점을 남겨두기 위해서도, 대학같은 제도의 확보는 역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의 무상성 ㅡ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
애초에 서구 철학은 그 기원에 있어서 교육의 무상성의 원리와 깊이 관계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전업 교사 소피스트가 그 교육에 상당하는 고액의 보수를 요구한 것에 반해, 소크라테스는 무보수로 철학을 강(講)했다. 더욱이, 교육이 유상이냐 무상이냐의 차이는 단순히 경제적 수법이 아니라, 철학의 존재의의 자체, 즉 철학의 탐구 대상인 진리에 관한 본질적 물음이었다.
기원전 6세기 솔론의 입법 이래, 아테네에서는 소수의 전통적 씨족에 의한 정치 독점이 제한되고, 다수의 성년 남자 시민에 의해 다원적인 정치참가가 실현되어 갔다. 용기나 절제라는 인간적인 덕은 일전에 혈통과 지위에 의해 결정되어 있었지만, 민주제의 새로운 시대의 젊은이, 일단 부유한 시민의 자식들은, 교육을 통하여덕을 함양하는 것에 기대를 모았다. 금전, 학식, 권력이 밀접히 연결된 사회상황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덕을 가르침받기 위해 소피스트가 필요해졌다.
전통적인 덕의 교육은, 시문이나 음악, 체조 등의 실천적 교육에 포함되어 있었다. 가령, 시인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등 위대한 시작품의 본질을 이해하고, 얼마나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인간의 덕을 얘기하여 전하는 교육자로 간주되었다. 한편, 프로타고라스는 전업 교사로서는 처음으로 보수를 도입하여, 덕의 교육을 독립된 방법으로 시도했다. 소피스트들은 청년들의 정치참가를 촉구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지식을 가르치고, 설득 기술을 교수했다. 그리고, 음악가나 건축가라는 전문가와 같이, 기능이나 노하우어를 전수하는 이상, 가르친 몫 만큼의 보수를 받는 것을 당연시했다.
이런 소피스트들에 대해, 변론술학교의 창설자 이소크라테스는 비난의 말을 남기고 있다. 그는 고액의 보수에 맞는 학식을 학생들에게제공하지 않는 사기적인 행위나, 학생을 고객으로 간주하면서도 그 지적인 성장을 기대하지 않는 부성실한 태도를 비난했다. 다만, 이소크라테스 자신도 소피스트라고 불림을 부정하지 않고, 학생으로부터 강의료를 징수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전혀 다른 시점에서 소피스트를 문제시한다. 소피스트에 의한 새로운 교육법 자체가 비판의 과녁이 되었다. 『프로타고라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란, 혼의 양식이 되는 것을, 상품으로서 도매하거나 소매하는 자가 아닐까'란 의문을 던지며, 소피스트를 상인으로 간주한다. 소피스트는 상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매매하는 상품의 본질에 정통할 필요는 없다. 즉, 그들이 신경쓰는 것은 상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팔까이며, 상품을 어떻게 만들어낼까를 습득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가 어디에서 산출해낸 상품을 '도매'하거나, 장대한 학문지식도 잘 세분화하여 효과적으로 '소매'할 뿐이다. 음식물이라면 이 대상을 용기에 넣어 가지고 돌아와 아는 자에 상담하고 소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학식의 매매는 운반이 불가능하므로, 제3자의 판단을 믿는 것이 어렵다.
소크라테스의 눈에는, 소피스트는 덕의 내실을 묻지 않고, 기존의 덕을 변론술에 의해 공교한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하는 인물로 비쳤다. 그것은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처럼 보이는 것을 상품으로서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인물이다. 소피스트는 무엇이라도 아는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른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소피스트는,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는데, 상품에 가격을 붙이는, '덕에 관한 언론과 학식을 다루는 판매업'으로 『소피스트』에 경멸스럽게 적혀 있다.
<앎에의 사랑(필로소피아)>
소크라테스는, 덕의 교육에 의해 어떤 이득이나 보수를 얻진 않았다고 한다. 그럼 어째서 소크라테스는 거기까지 해서 철학의 무상성을 고집했던 것일까? 금전을 지불하면 누구나 지식을 획득 가능할지도 모르나, 누구나 철학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가능하진 않다. 앎의 매매와 <앎에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태도이다. / 확실히 앎의 상품화와 보수의 필연성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상인과 고객의 관계로 변질시켜버린다. 학생이 상품을 구입하기 원하는 것에 응하여, 교사까지도 상품화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크라테스가 교사와 학생의 계층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껏 몇 사람의 스승이 되었던 적도 없습니다. […] 그 사람들(늙음과 젊음, 빈부를 묻지 않고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에 대하여, 나는 누가 착하게 되건 되지 않건, 지금껏 누구에게도 어떤 지식을 전수하는 약속도 한 적이 없고, 또한 실제로 가르친 적도 없다고 한다면, 책임을 질 조리있는 근거가 없게 되겠지요.”(『변명』)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신 뿐이고, 소크라테스 자신은 혼의 교육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지의 자각이야말로 소크라테스 교육의 단서이며, 그것은 스승의 입장을 되묻게 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인 이상, 보수를 요구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소크라세트 교육의 본의는 금전에 의한 지식의 교환과도,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학문지식이 전수되는것과도 달리, 인간 사이의 정신적인 성숙 과정이 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조건잡는 것은, 무지의 자각과 진리에 대한 철저한 물음이다. 교사는 스승으로서 권위 있는 교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조산사(산파술)적'인 수법으로 대화자의 능력을 개화시키려 유혹한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고, 무지한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앎을 구하여 타자와의 대화가 희구된다. 소크라테스는 지자와 철학자를 엄밀하게 구별했는데, 그에 있어 철학자란 자신의 무지로부터 출발하여 지를 실천적으로 욕망하는 자를 가리킨다.
현재, 배움이 왕왕 상인과 고객의 관계에 접근하는 가운데, 앎을 무상으로 증여하는 계기는 어떻게 하여 발견되는 것일까. 대학에서는 단위나 학위라는 명확한 형태로 '가르친다-배운다'라는 계약이 합리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애초에 이 관계는 불투명한 요소를 포함한다. 배우는 쪽이 무언가를 이해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방적인 가르침만으로 생겨난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배우는 쪽이 그 자질이나 발상에 의해 자생적 능력을 개화시킨 것이라는 반론의 여지도 남아 있다. '타인으로부터 가르침받을 것인가' '스스로 배울 것인가' 라는 배움의 타율과 자율의 물음은, 보수와 보상의 관계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근대적인 대학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스스로 배우는 것'이 목표되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적인 것이다. 교사와 학생은 같이, 자신이 의존하여 서는 고유한 장소를 비판적으로 되묻고, 그 때마다, 새로운 물음을 몸에 껴안고, 그것을 음미/검토하는 것으로 자신을 쇄신해 간다. 그 때, 교육이 실리적인 학습과 선을 긋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외경'이다. 배우는 쪽이 '자신의 책임으로 초월자 앞에서 실존하는 것을 존중하려고 하는 무한한 정신의 이념'이야 말로, 외경심을 불러일으켜, 소크라테스적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야스퍼스처럼, '초월자'라고까진 하지 않더라도,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할 때 느껴지는 외경심이, 배우는 쪽들에 앎의 무상성의 감촉을 안겨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확실히, 무상의 배움을 근본적인 방법으로 실천했으나, 그것은 무상성과 <앎에의 사랑>의 본질적 결합을 묻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볼런티어로 가르치면, 스승과 제자의 계층질서가 없어져 더 순수한 배움이 달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책임한 앎의 매매, 내용에 앎자지 않은 과도한 보수의 요구, 교사와 학생의 관계의 상업주의적 경직화 등, 소크라테스가 지적하는 것은 <앎에의 사랑>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소크라테스의 태도로부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가령 보수와 보상의 논리에 따른다 할지라도, 교환원리를 넘어선 앎의 무상성을 '누구의 것도 아닌' 앎의 공공성을 어떻게 (틈바구니 사이로) 엿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essay6부터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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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아즈마 히로키 - 『존재론적, 우편적』 3장 번역 (2014년 이전)
02. 데리다의 교육론 : 니시지마 유지 - 『철학에의 권리』 번역 (2014년 이전)